화장실 갈 때와 올 때
화장실 갈 때와 올 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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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 (한국농어촌공사 의령지사 과장)
지난주 직장일로 경기도 안양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옛날에는 한 달씩이나 걸어서 가던 길이건만, 탁 트인 고속도로와 한 시간에 100㎞를 달릴 수 있는 성능 좋은 자동차 덕분에 아침 일찍 서둘기만 하면 아무리 천리길 서울이라 하더라도 하루 만에 일을 처리하고 저녁은 집에서 먹는 것이 가능해졌다. 참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 같다.

출장의 목적을 달성하고 주차비를 머릿속으로 계산하며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집을 나설 때 분명히 있었던 한국은행권 지폐가 만져지지 않는다. 혹시나 해서 이주머니 저주머니를 탈탈 털었지만 지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의 속상한 기분을 아는 분은 알 것이다. 머릿속에서 두 가지 생각이 서로 다투며 일어난다. ‘아마 운전할 때 시트에 떨어졌을 거야’하는 바람의 마음과 ‘그냥 불쌍한 사람 도와줬다고 생각하자’고 하는 체념의 마음이 그것이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를 빠른 걸음으로 건너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의 앞문을 열고 운전석 시트를 살펴보았지만 지폐는 없었다. 바람의 마음은 금세 에너지를 잃어버리면서 체념의 마음에게 자리를 넘겼다. 하지만 체념을 하자고 자꾸자꾸 다독이지만 아쉬운 생각은 그리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돕기를 했더라면, 집을 나올 때 아들에게 맛있는 것 사 먹으라고 줬더라면, 어제 막걸리 집에서 내가 계산을 했더라면….

대전까지 내려오는 내내 이런 생각들이 체념을 적극적으로 방해를 한다.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출발하기 전 행여나 하는 마음에 차안을 살폈는데 조수석 의자 틈 사이에 반으로 접혀진 지폐가 예쁘게 껴있는 것이 아닌가. 몇 달 만에 만나는 사랑하는 임이 이렇게 반가울까?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소나기가 이리 반가울까? 행여나 다칠세라 조심조심 손가락 두 개로 끄집어내어 세어보니 만 원짜리 4장에 천 원짜리가 3장이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라고 하더니 지금까지의 생각대로라면 돈을 찾자마자 불우이웃돕기에 보태도 전혀 아깝지 않을 것인데, 그게 생각처럼 쉽게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화장실 갈 때 마음이랑 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더니 내가 딱 그 짝이다. 휴게소 입구에 대한적십자사에서 설치한 속이 보이는 모금함 앞에서 어렵사리 생각을 정리한다. 그래, 반 토막은 아니더라도 부가가치세는 내야지 하는 생각으로 5000원 지폐 한 장을 모금함에 넣었다. 양심의 일부를 건진 것 같아 절로 미소가 일어난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항상 내 곁을 떠날 수 있다. 현금도 좋고 물건도 좋으니 있을 때 조금이라도 떼어 이웃을 위해 내어놓자. 모두가 웃는 세상은 작은 나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강신 (한국농어촌공사 의령지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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