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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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2. 그려지는 골격
언제부턴가 조운은 똑같은 꿈 하나를 꾸고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조금도 변하지 않은 꿈을 꿀 수가 있을까? 그게 어언 수 년째였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그건 조운이 현실 속에서 늘 가지는 꿈, 다시 말해 소망이요, 이상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연을 하나 만들었다. 얼레도 설주를 두 개나 네 개가 아니라 여섯 개나 되게 짜서 중앙에 큰 자루를 박아 엄청 컸고, 연줄도 어지간한 밧줄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여느 연처럼 뼈대를 가는 대가지로 한 게 아니라 굉장히 굵은 것으로 만들었다. 더 놀라운 일은, 연의 맨 윗부분에 다른 연에서는 볼 수 없는 뼈대를 가로로 달았다는 사실이었다. 상단의 이쪽에서 저쪽까지 잇대어놓은 그 살대는, 사람이 앉아도 끄떡없을 정도로 튼실하고 완벽해 보였다. 실제로 그는 나무에 오르듯 거기에 올라타서는 상돌에게 얼레를 넘겨주면서 연을 날리라고 했다. 연은 금방 두둥실 하늘로 떠올랐다. 공중에 오른 조운은 연 위에 앉아 상돌에게 계속 연줄을 풀어라고 소리쳤다. 그는 점점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새들이 그의 발밑에서 날고 있었다. 사람들과 집들이 아주 조그맣게 내려다보이더니 나중에는 그마저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저 연을 타고 끝없는 비행(飛行)을 하고 또 하였다…….

꿈에서 깨어난 조운은 아직도 제 몸이 공중에 붕 떠 있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연을 타고 새처럼 훨훨 날았던 그 자신의 모습이 현실에서보다 더 또렷하게 나타나 보였다.

조운은 꿈에서 보았던 그런 큰 연과 얼레와 연줄의 재료를 구하기 위해 사방팔방 헤매었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만들려는 그 작업은 어쩌면 무모하고 미련하고 우악스러운 짓이었다. 그런 조운에게는 언제부턴가 몇 가지 별명이 따라붙고 있었다.

‘새총각’과 ‘연무당’ 그리고 ‘대나무귀신’.

그의 부모 강술명과 박씨는 갈수록 근심과 혼란에 빠졌다. 하도 대밭에만 가서 노니 대나무귀신이 들러붙었다고 하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문제는 새총각과 연무당이라는 쪽이었다. 왜 그렇게 불리게 되었는가? 조운은 사람만 만나면 늘 이랬던 것이다.

-새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은 어떨까요?

-연에 올라타면 우리 인간도 날 수가 있어요.

-물레방아만 한 얼레만 만들면 연은 집보다 커도 날릴 수 있다고요.

하루이틀도 아니고 그런 일이 연이어지자 급기야 사람들은 조운을 이상한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새와 연과 대나무에 관련된 것만 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아니 동년배들에 비해 훨씬 영리하고 예절 바른 젊은이였지만.

조운은 외톨박이가 되어갔다. 그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아니다. 한 사람이 있다. 그 미친 여자아이. 이제는 처녀티가 나는. 하지만 세월은 그 광녀의 지능만은 비껴가 버린 듯했다. 나 연 한 개 더 만들어 줘. 히히히. 그랬다. 아직도 여전히 몰래 그의 뒤에 와서 등을 탁 때리고, 저고리 옷고름을 들어 입으로 잘근잘근 씹으며, 요부처럼 살살 눈웃음치고 몸까지 배배 꼬면서, 나 연 한 개 더 만들어 줘. 히히히.

“조운이, 자넬 볼 낯이 없네.”

“어이쿠! 하늘은 저런 년을 왜 데려가지 않는지. 도로 내 뱃속에 집어넣을 수만 있으면 집어넣고 싶어. 나는 못 살아, 못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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