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 (2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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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2. 그려지는 골격
그런 다음 광녀는 비척비척 발을 옮겨놓기 시작했다. 점점 멀어져 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대나무들이 무연히 바라보고 있었다. 조운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엉덩이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쩌면 대꼬챙이 같은 것에 찔렀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조운은 그대로 앉아만 있었다.

어느 새 놀빛이 대숲을 물들이기 시작했다. 조운은 광녀를 머릿속에서 내몰기 위해 그가 성장하면서 맨 처음 착상을 얻었던 것에만 마음을 쏟았다. 그것은 그가 어릴 때부터 무척 잘 만들었던, 아이들이 날리며 노는 연이었다. 가는 대나무를 뼈대로 하여 종이를 바르고, 실에 달아 공중에 날리는 장난감.

조운은 그 순간을 영원토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날도 언제나처럼 어떻게 하면 사람도 저 공중을 날 수 있을까 하는 한 가지 생각에만 빠진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을 때였다. 얼핏 그의 눈에 아이들이 공터에서 날리는 꼭지연, 치마연, 초연 등이 들어왔다. 그것들은 허공 높은 데서 잘도 떠 있었다. 때로 서로 연줄 끊어먹기 하는 연싸움을 하면 굉장히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도 하였다. 딴 연줄을 잘 끊도록 자기 연줄에 돌가루나 사기가루 등을 바르는, 다시 말해 ‘갬치 먹이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런데 얼마나 나무둥치에 기대고 서서 바라보고 있었을까? 그의 입에서 환호, 아니 발작하듯 이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 그래! 저, 저거야, 저거! 그는 실로 기쁘고 흥분한 나머지 막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 자리에서 미치광이처럼 날뛰기도 하고, 엄청난 충격으로 가슴이 조여드는 듯 손바닥으로 그 부위를 빡빡 문질러대었다. 그런 중에도 쉬지 않고 점쟁이가 주문을 중얼중얼하듯 했다.

“뼈대는 연처럼 대나무, 날개는…… 음, 가만 있자, 그래, 무명천이 좋을 거야. 질기고 가벼우니까. 그것들을 묶을 끈도 있어야겠고. 또 필요한 게 뭐지?”

그때 마침 그의 눈앞을 마부가 지나갔다. 그 황색 말처럼 얼굴이 황토빛인 늙수레한 사내가 끄는 수레바퀴 소리가 유난히 그의 귀를 크게 울렸다. 그 소리는 땅에서 하늘로 퍼져 올랐다. 마치 수레가 허공을 나는 것처럼. 그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아, 바퀴! 바퀴는 소나무가 어떨까? 참나무라도 상관없어.”

그는 자기 다리가 바퀴인 양 교대로 빠르게 내디뎌보다가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 그건 나중에 생각해 보기로 하고, 먼저 필요한 건 대나무야, 대나무!”

그랬다. 대나무였다. 다행히 이 고을에는 대밭이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그것은 오래 전 그 탁발승의 예언대로 미리 정해진 이치였는지도 모른다. 조운으로 하여금 하늘을 날게 할 기회와 힘을 주기 위한 하늘과 부처의 오묘한 섭리.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조운이 막 생각해낸, 하늘을 나는 기구를. 그날 이후로 조운의 머릿속에는 오직 단 하나의 물체만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그가 만들 인공의 새. 바로 ‘나는 수레’였다. 나는 수레…….

대나무를 골격구조로 하여 격자형으로 조립한 후, 무명천을 써서 날개가 되게 할 작정이었다. 마끈으로 뼈대가 되는 대나무와 날개인 무명천을 단단히 묶을 계획이었다. 거기에 화선지도 붙이고, 또한 소달구지나 말이 끄는 수레같이, 소나무와 참나무 등으로 팔랑개비 같은 바퀴를 달면 땅에서도 이동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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