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 소통과 대자보 소통
SNS 소통과 대자보 소통
  • 경남일보
  • 승인 2013.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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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안녕들 하십니까?는 그냥 지나치면서 던지는 형식적 수준의 안부 인사다. 지극히 일상적인 표현에 불과하지만 질문에 묘한 어감이 묻어 있다. 그냥 “네”라고 답하기가 내키지 않더라도 그렇게 말하고 넘어가는 것이 속편하다. “아니요”라고 말했다가 자칫 구구한 설명까지 덧붙여야 하는 귀찮은 일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녕하든 못하든 ‘네’라고 습관적으로 답하는 것이다.

그동안 이처럼 무의미하게 받아들여져 왔던 ‘안녕’이란 말이 대한민국의 2013년 12월을 깨우고 있다. 고려대에서 한 대학생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대자보를 게시한 이후 전국 방방곡곡에서 “안녕들’ 대자보가 신드롬처럼 확산되고 있다.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경남지역의 대학가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일부 고등학교에서도 대자보가 나붙었다. 진보와 보수 여부를 떠나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대한 젊은이들의 생각을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디지털 세대의 대자보 소통은 처음에 다소 어색해 보였다. 대자보는 386이전 세대의 대표적인 소통문화다. 요즘 젊은이들은 활동과 관심의 공유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소통문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자보 소통의 시작은 아날로그식 접근법이다. 현란한 손끝 놀림으로 만들어 내는 SNS식 소통보다는 정성껏 눌러 쓴 대자보식 소통이 젊은이들의 마음을 더 짠하게 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엄밀히 따지면 여론확산은 SNS가 주도적 역할을 했기 때문에 온·오프가 융합된 신종 소통방식이지만, 그래도 시작점은 아날로그 대자보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무엇을 원하는지(want), 어떻게 느끼는지(feel)’에 대해 말하는 것이 많이 서툴다. ‘아무거나’라는 술안주가 등장할 정도로 자기표현을 아낀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다. 간혹 수업시간에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물으면 대부분이 머리만 긁적거린다. 그런 젊은이들이 왠지 앞다퉈 대자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의 공감과 동참도 갈수록 뜨겁다.

대자보 열풍에 대한 원인 분석은 제각각이다. 불씨를 일으킨 첫 대자보를 보면 과격한 정부 비판이나 극단적 주장을 찾을 수 없다. 우리가 안고 있는 ‘철도 민영화’, ‘밀양 송전탑’, ‘국정원 대선개입’ 문제에 대한 비판적 질문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자보 열풍은 그동안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과 무감각 상태에 빠져 있던 대학생들에게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소박한 이 한마디가 안녕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젊은 지성인의 양심에 불을 댕긴 것이다.

젊은이들이 현실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의견 표시는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오히려 정치적·사회적 무관심이 더 큰 문제다. 대학생들 사이의 대립과 갈등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할 일은 아니다. 지나치게 갈등적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갈등만 더 키우게 될 것이다. 다만 젊은 지성인답게 진영논리를 벗어나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 논쟁이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각종 사회현상에 대해 그리고 자신들의 미래에 대해 스스로 대안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공감대를 형성해 나간다면 대자보 신드롬은 집단지성을 이끌어 내는 또 하나의 소통수단이 될 수 있다.

기성세대들도 젊은이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위로의 말만 던져서는 안된다. 더 이상 아프지 않도록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 ‘목마르지’라는 말 한마디로 목마른 젊은이의 갈증을 해소할 수 없다. 젊은 세대의 목소리에 좀 더 귀 기울이고 그들과 대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젊은이들이 좌절감을 극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찾을 수 있도록 많은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이 시급히 풀어내야 할 숙제다.

 

안상근 (객원논설위원, 가야대학교 행정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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