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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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2. 그려지는 골격
그런데 잔뜩 꿈에 부풀었던 조운은 처음부터 커다란 벽에 부닥쳤다. 상상 속에서는 그렇게 훌륭한 작품이었던 것이, 막상 실제로 제작해 놓고 보니 스스로에게 부끄럽고 그저 막막할 따름이었다. 깜냥에는 죽을힘을 썼지만, 얼기설기 조립된 그것은 너무나 어설프고 성에 차지를 않았다. 올라타기는커녕 누가 옆에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그냥 망가져버릴 정도였다. 작은 바람에도 술 취한 사람처럼 비칠비칠 굴러가더니 그대로 맥없이 뒤집어지거나 엎어졌다. 무엇보다 설계한 대로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그 기구를 하늘로 날아오르게 한다는 건 어불성설이 아닐 수 없었다.

조운은 점차 좌절과 실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던가. 방황과 낙담의 시간이 목을 죄었다. 불가능해 보였다. 그것은 신의 영역 안에 있을 뿐이었다. 그 기구에 깔려 숨막혀 죽어가는 악몽에 시달렸다. 어쩌다 용케 그것을 만들어 타고 하늘로 올랐다가 끝없이 추락하는 가위에도 눌렸다. 그런데 꿈속에서라도 완성시킨 그 기구가 눈을 떴을 때도 기억이 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이건 또 무슨 조화속인지 하나도 떠오르지를 않았다. 꿈에 그가 탄 것은 구름이나 안개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구름 잡고 안개 잡는 짓일랑 어서 집어치우라는 나쁜 서몽이었는지도 모른다.

조운은 사람들을 피했다. 모두가 손가락질을 해대는 것 같았다. 그런 가운데 유독 상돌이란 그 백정 아이만 그리워졌다. 지금은 그도 어엿한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날 이후 조운은 상돌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나중에야 안 일이지만, 상돌은 양반 집안 아이들에게 몰매를 맞고 자기들이 살도록 나라에서 허가해준 구역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양반이 공연히 백정을 괴롭힌 일은 당시 비일비재했다.

어느 날, 조운은 아버지와 함께 성내로 들어갔다. 거기 성곽은 예로부터 전해지는 말 그대로, 마치 남산을 향하여 물결을 차고 돌진하는 전함 마냥 되어 있었다. 기와집과 초가집들이 의좋게 머리를 맞대고 있었다. 거기 공동 우물터로 가서 두레박줄을 내려 길어올린 맑고 상쾌한 우물물을 부자가 함께 마셨다.

그들은 팔작지붕이 웅장한 누각 아래 서서 저 밑을 흐르고 있는 남강을 굽어보았다. 햇살에 반짝이는 모래밭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드넓었고, 잔잔한 물 위에는 서로 희롱하는 흰빛과 잿빛 물새들 날갯짓이 아름답게 비쳤다. 그리고 조운이 잘 가는 강변의 무성한 대밭은 벼슬아치들 서슬처럼 시퍼렇게 보였다. 몸집이 커다란 시커먼 까마귀 떼가 대밭 위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봉황새가 살고 있으면 까마귀들이 저렇게 설치지 못할 텐데 말이다.”

술명이 까마귀 무리를 올려다보며 아쉬운 듯 말했다. 어릴 때 우연히 한학 공부도 할 기회가 있었던 그는, 때때로 농사꾼보다는 선비 같은 분위기를 풍기곤 하였다.

“바다 건너 왜구가 우리 조선을 노린다는 소문이 심상치가 않아. 그래 까마귀를 보면 왜놈들 생각이 더 나거든. 왠지 피 냄새도 자꾸 풍기는 것 같고 말이다.”

아버지 그 말을 들은 조운은 오싹해짐을 느꼈다. 사람 시체를 보면 맨 먼저 달려들어 눈알과 살점을 파먹는 새가 까마귀라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새를 재수 없는 흉조(凶鳥)라고 하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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