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으로 빚은 아름다움에 빠져들다
흙으로 빚은 아름다움에 빠져들다
  • 경남일보
  • 승인 201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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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팁] 세계 유명 도자기
한 해를 마무리하는 지금, 창가에 부딪치는 바람소리와 함께 모락모락 피어나는 커피향을 전하는 세계 유명 도자기들. 그들 회사에 대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한다.


1)야드로

스페인의 명품 도자기라고 할 수 있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가들이 직접 만든 도자기상. 최근에 매스컴에도 나왔지만 작품에 따라 수천만 내지 수억원까지 가는 작품이 있을 정도로 아주 유명한 도자기이다.

스페인의 작은 농촌인 베네치아에서 야도로라는 3형제 에 의해 이 도기는 시작되었다. 비록 농업에 종사하는 아버지를 도우며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야드로 형제는 당시 도기공장에서도 일을 했다고 전해져 온다. 도기공장에서 일을 하면서 도기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으며 거기에만 만족하지 못해 직접 자신들의 집에 가마를 설치하고 도자기에 대해 열정을 쏟아부었다고 한다. 정말 우아한 야드로를 보고 있으면 고적적인 인간의 모습에 매료될 수밖에 없음을 느낄 수 있다. 어느 한 종류에만 제한되어 있지 않고 인간의 모습부터 동물의 세계, 새, 항아리 등의 아름다움은 그야말로 야드로의 대표적인 생산품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야드로의 제품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제품은 아니었다. 1950년대 상반기에 자신들의 집에서 시작해서 시판을 하였지만 여러 번의 실패로 좌절의 고배를 마시기도 하였다. 하지만 야드로 형제들은 멈추지 않은 열정을 가지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성공의 대열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에 따른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1960년대에 야드로 형제는 공장을 늘려가기 시작하였으며, 10년도 되지 않아 공장을 7개로 확장했다. 공장이 늘어남에 따라 수출까지 하게 되어 야드로의 공장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회사로 발돋움하게 됐다.

끝으로 야드로 제품이 유명해지는 이유는 따로 있다. 그 이유는 야드로 제품은 각각의 제품생산이 끝나면 원형과 주조 틀을 없애 버려 이 작품을 구입한 사람들로 하여금 제품의 가치와 어떤 특권을 갖게 했고, 소수의 제한된 작품을 구입한 경우 야드로 가족 중 한 명의 사인이 들어간 품질 보증서를 받게 되어 작품의 가치를 한층 더 높게 하고 이 작품이 유일하다는 것을 보증해 주었다.



2)헤렌드

환상적인 색조를 담은 격조 높은 예술품과 헝가리의 전통을 함껏 볼 수 있는 헤렌드.

함스부르크 왕가의 빈스 스팅글이 통치하던 오스트리아제국에 속했던 전원도시 헤렌드는 1826년 헝가리의 도자기 산업이 작은 공장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초기에 헤렌드는 외국의 유명자기를 모방으로 시작하였지만 점차적으로 19세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헤렌드는 유럽 일류 가마의 정점에 서게 됐다. 헤렌드의 기술적인 기법 중에 조그맣게 예리한 칼로 도자기를 섬세하게 도려내는 투각법과 점토를 실처럼 만든 뒤 틀에 의지하여 형태를 짜 올리는 망세공법으로 자기만의 독자적인 기술을 가지게 되어 오늘날의 헤렌드를 낳게 하였다.

이러한 기법들로 유명세를 타게 된 헤렌드는 당시 단골손님이 유럽황실의 왕이었으며, 각종 국제대회에서 많은 수상을 하게 되어 더욱더 큰 유명세를 가지게 됐다. 1949년 헤렌드 자기제작소는 국유화됐으며, 1960년대에 들어서며 많은 돈이 투자됨으로써 현대화 시설을 갖게 되었고, 아직도 수작업으로 하는 헤렌드의 자기는 현대인들에게 예술품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3)후첸로이터

후첸로이터는 유럽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독일 전통과 역사를 담고 있는 뿌리 깊은 회사다. ‘흙으로 지구상의 모든 것을 표현한다’는 강한 신념을 기업이념으로 하고 있다.

후첸로이터의 역사는 칼 마그너스 후첸로이터(Carl Magnus Hutschnreuther·1780~1845)에 의해 1814년 북부 바이에른(Northern Bavaria) 바바리아 도자기 단지에 설립됐다. 후첸로이터는 부친의 공장에서 자기를 장식하는 기술을 습득했고, 18세 때에는 본인이 만든 자기들을 귀족들에게 판매하여 여행을 다니는 경비를 만들곤 하였다. 호헨베르크에 바바리안 자기공장이 처음 세워졌을 때 독일의 90% 이상 이 지역에서 독점하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초창기에는 맑고 투명한 백자를 주로 생산해 오다가 1860년부터 핸드 페인팅 기법을 사용하여 화려한 무늬의 도자기들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후첸로이터는 순백금의 장식용 자기를 제작해 보는 것이 꿈이었고, 각고의 노력 끝에 투명도자기 제작에 성공하게 됐으며 일반대중에게 자기를 보급시킨 주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26년 쯔비벨무스터 전통무늬 사용을 마이센으로부터 인계 받게 됐다. 그후 1930년에는 독일 법원으로부터 쯔비벨무스터를 대량생산이 가능한 유일한 공식 라이선스 업체승인을 받게 되었고, 20세기초부터 쯔비벨무스터의 엄청난 인기로 후첸로이터 고속성장을 거듭하게 되었다. 지금으로 젠탈과 인수합병됐다.



4)스포드

18세기 말까지 본차이나의 개발에서 뒤처져 있던 영국은 여러 도자기에 고령토 안에 젖소 뼛가루를 섞은 본차이나 기술개발을 시도했으나 완전한 제품을 제작하기까지 너무도 힘든 경험을 했다.

1770년 뱅크스에 공장을 설립한 스포드는 이미 진행되고 있던 질그릇에 청색의 밑그림 프린팅 기법을 1784년에 완성하게 됐다. 세월이 흘러 조사이어 스포드는 지병으로 세상을 등지게 됐고, 그의 아들 스포드 2세가 가업을 승계받게 됐다. 선대의 작품으로 수많은 테스트를 반복했다. 1796년 대륙의 마이센 도자기에 대등할 만한 획기적인 도자기를 개발하게 됐다.

그 이후 많은 제품을 시장에 선보이게 됐고, 1806년 조지왕이 스포드2세가 운영하는 공장에 방문하게 됐다. 이에 반한 조지왕은 스포드의 자기에 경이로움을 감출 수 없이 감탄했으며, 황실의 도공 및 영국 도자기의 제조업자라는 명예까지 얻게 됐다. 이로써 그동안 유럽에서 등한시 받던 영국 도자기는 스포드라는 메이커로 유럽의 세계적인 자기에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고 영국 도자기의 역사에 불멸의 이름을 남기게 됐다.


민은희 릴리 하우스메이킹 평거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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