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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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3. 무인에의 길
“네 운명이 곧 나와 네 어머니의 운명이 아니겠느냐?”

조운으로 인해 술명은 숙명론자가 돼가고 있었다. 갈수록 그 탁발승의 예언이 현실로 다가서고 있다는 예감이 그물망처럼 덮쳐왔다. 그것이 아들에게 축복인지 저주인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그리고 고맙습니다.”

조운의 두 눈이 뿌옇게 흐려졌다. 술명이 아들을 외면했다.

“아니다. 오히려 부모로서 네게 미안하다.”

“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버지?”

“네가 보통 아이들처럼 좀 더 쉽고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팔자를 지니고 태어나게 해주지 못하고, 그렇게 힘들고 위험한 길을 걸어가야 할 운명을 갖고 살아가게 했으니 말이다.”

술명의 한숨소리에 가슴이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아 조운은 고개를 있는 대로 흔들었다. 그 바람에 억지로 참았던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굴러내렸다.

“아닙니다, 아버지. 그건 절대로 아닙니다! 전, 도리어 제가 이런 운명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신 부모님 은혜에 참으로 감사할 뿐입니다.”

“하늘이 있다면, 이렇게 착한 네 소원을 반드시 들어주실 거라고 믿는다.”

조운은 커다란 바윗덩이에 깔린 것같이 너무나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인간의 소원. 백정인 상돌의 소원은 무엇일까? 조선 최하위 천한 신분인 백정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불가능하고 거창한 것이라면 좋은 대나무평상? 그 어느 것이든 꼭 이루어지길 빌어주고 싶다.

그리고 그 광녀의 소원은? 조운은 그만 온몸이 불길에 싸이는 듯했다. 머리털이 죄다 빠지는 것 같았다. 미친 그 여자가 분가루를 바른 것같이 뽀얀 젖가슴을 그의 눈앞에 들이대며 하던 말이 생생히 되살아났다. 나, 너 어미 되고 싶어. 너, 나 아들 안 될래? 나, 너 각시 되고 싶어. 너, 나 신랑 안 될래?

“하늘이 들어주시게 하는 것도, 인간이 하기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 아비도 같은 생각이다.”

조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술명은 동남 방향으로 눈을 던졌다. 거기 강 저쪽 멀리로 높고 가파른 벼랑이, 마치 보는 이의 발이 미끄러지는 것 같은 착각을 던져주고 있었다. 뒤벼리였다. 그 고을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 새벼리와 오랜 세월 동안 쌍벽을 이루고 있는 곳. 흐벅지게 피는 진달래가 절경을 이루는 선학산이 강 속으로 빠지게 않게 단단히 지탱하고 있는 형세였다.

“조운이 네가 만든 하늘을 나는 그 기구가, 저 뒤벼리처럼 반드시 우리 집안과 고을, 더 나아가 이 나라를 지켜주리라 믿는다. 이 아비는 왜놈들이 정말 싫다.”

때마침 저 아래 강 위를 날고 있던 물새들이 그들의 머리 위를 향해 힘차게 날갯짓을 해오고 있었다. 다리가 길다란 왜가리였다. 조선의 백로과 새들 중에 제일 큰 종이라는 그놈들 뒤통수에 있는 두 개의 청홍색 긴 털이 인상적이었다.

술명은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채 왜가리를 올려다보고 있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비친 조운은 더 이상 어린 새가 아니었다. 지금 거침없이 비상하고 있는 그 새들처럼 다 성장한 어른 새였다. 그러나 날개가 없는 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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