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 (한국농어촌공사 의령지사 과장)
순천 송광사로 들어가는 마지막 다리는 능허교라는 본래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다리 위에 지어진 건물 이름을 따서 우화각(羽化閣)으로 더 알려져 있다. 이 능허교는 구조상 무지개다리로 중간에 용머리(龍頭)가 다리 아래로 흐르는 물을 지켜보고 있다. 용생구자설(龍生九子設)에 의하면 리수(?首)라 불리는 용의 아들인데 물을 통해 삿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감시하는 역할을 한다. 다리 위를 건너는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아래로 내려가 보면 이 용의 입에는 여의주와 함께 엽전 석 냥이 철사 줄에 걸려 있다.
이 엽전에는 시주와 관련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조선 숙종 때 주지스님이 다리를 놓기 위해 십시일반 모아진 시줏돈으로 불사(佛事)를 무사히 마쳤는데 당초 계획보다 석 냥이 남았다. 요즘 같으면 예산을 절감한 우수사례로 치하하고 다른 곳에 쓰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불가(佛家)에서는 시주 받은 금품을 다른 일에 쓰는 것을 호용죄(互用罪)라 하여 율장에서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 돈을 흔쾌히 내어 놓은 시주자의 염원이 담겨있기 때문에 다른 용도에 쓰는 것은 약속 위반이며 기만행위이기 때문이다. 스님들은 의논 끝에 돌다리아래 손이 닿지 않는 용머리에 돈을 달아두기로 했다. 훗날 돌다리를 보수하거나 새로 건립할 때 보태 쓰도록 한 것이다.
위의 이야기들을 통해 우리는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돈을 대하는 마음자세와 돈을 어떻게 사용해야하는가 하는 활용법이다. 고려의 명장 최영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했다. 황금을 돌처럼 길바닥에 아무렇게나 차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돈을 대할 때와 돈을 사용할 때 사심을 버리라는 가르침일 것이다. 신문의 사회면을 장식하는 돈과 관련된 사건들을 볼 때마다 능허교의 엽전 석 냥이 떠오른다. 우스갯소리로 옛날 엽전은 가운데 네모난 구멍을 통해 앞을 볼 수 있었지만, 요즘 돈에는 구멍이 없어 돈이 눈앞을 가리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하니 지금부터 만드는 돈에는 가운데 구멍을 내는 것은 어떨까?
강신 (한국농어촌공사 의령지사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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