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2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3.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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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장. 3.무인에의 길
“사리가 분명한 사람이다. 자고로 사내란 목에 시퍼런 칼날이 들어와도 세 치 혀를 굽혀서는 안 되는 법이지. 언젠가는 반드시 큰일을 해낼 인물인 게야. 그러니 더 이상 다른 소리 말고…….”

부인과 친인척들 반대에 부닥친 성춘이 한 말이었다.

“게다가 그런 피를 물려받은 후손들 중에는, 필경 이 나라 최고 지조 높은 대학자나, 아니면 영웅호걸 장군이 나올 터. 그런 가문과 사돈이 되다니 조상이 돌보신 게야, 조상이. 하하하.”

어쩌면 성춘은 사위 충갑의 피 속에는 그의 12대 선조, 그러니까 시민에겐 13대 조상이 되는 고려무장 김방경의 기상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는지도 모른다. 저 삼별초의 난 때 대활약을 펼쳤던 김방경.

그날 성춘의 사랑방에 부녀가 마주 앉았다. 이씨 처녀는 황해도 대청도의 해묵은 뽕나무로 만든 서안(書案)에 눈이 갔다. 옻칠을 하지 않고 인두로 지지고 향유로 닦아 퍽 고담하게 만든 앉은책상이었다. 딸의 눈길이 거기 얹힌 서책에 머물러 있다는 것을 안 성춘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네 시가가 될 그 집안은 지체 높은 가문이니, 네가 거처하는 안방에도 저런 서안을 비치해놓고 사용할 수 있을 게야. 네 뜻은 어떠냐? 시집갈 때 아비가 읽던 서책도 몇 권 가져가게 해주랴?”

성춘은 혼례를 앞둔 딸에게 시가가 될 집안 내력을 세세히 들려주기 시작했다. 어쩌면 성춘도 사람인지라 금지옥엽 기른 딸을 자식까지 딸려 있는 홀아비에게 보내는 게, 가슴 한구석에 옹이로 박혔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아니면, 고분고분 아비 말을 따르는 착하고 심성 깊은 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풀어주기 위해 더욱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이야기는 첫닭이 ‘꼬끼오!’ 홰를 칠 때까지도 그칠 줄 몰랐다.

“김방경 장군은, 네 시가의 대 선조이신 장군은, 고려의 도원수로서 원나라 군대와 함께 일본 정벌에도 나서신 적이 있느니.”

이씨 처녀 가슴이 풀쩍 뛰었다. 그렇게 대단한 가문이라니. 자신이 그런 집안의 피를 물려받은 자식을 낳게 된다는 사실을 생각만 해도 마음이 뿌듯했다.

“비록 실패로 끝난 일이긴 하지만…….”

성춘은 서안 옆에 놓인 연상(硯床)을 천천히 바라보았다. 그 상단 뚜껑에 가늘고 긴 대나무 조각을 조합하여 장식한 복자(福字)무늬와, 그 둘레와 몸체에 장식한 번개무늬가 호롱불빛 아래 드러나 보였다. 절개의 상징인 대나무가 그는 마냥 좋았다.

“그래도 얼마나 자랑스러운 이 나라 역사의 주역이시냐 말이다.”

이씨 처녀는 더욱 다소곳한 모습으로 고개 숙여 답을 대신했다.

“여자인 넌 잘 모르겠지만…….”

성춘은 앞에 놓인 술상을 손바닥으로 두어 번 가볍게 두드린 후 말을 이었다.

“술은 종종 전쟁 수행의 가장 큰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단다. 당시 소주를 좋아했던 원군들은 본국의 술을 가져와 안동에 머물 동안 마셨다고들 하는데, 안동에 와 있던 충렬왕이 드실 궁중음식에도 그에 준하는 술이 만들어졌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지금도 안동에서 나는 소주가 유명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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