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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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1. 둘님, 사랑이어라
시간은 경사 급한 계곡을 세차게 흘러내리는 물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그만큼 모든 것들도 몰라보게 바뀌었다.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었다. 오늘도 실패였다. 아마 수천, 수만 번은 거듭된 실패였을 것이다.

조운이 밤낮으로 작업을 하는 장소는, 그의 집이 있는 가마못 안쪽 마을의 저 뒤편, 그러니까 인가에서 북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에 있는 비밀의 장소 같은 공터였다. 그곳에는 조운의 유년과 청년 시절이 함께 숨 쉬고 있었다.

거기는 남쪽 방향만 제외하고는 삼면으로 야트막한 산자락이 흘러내려 조그만 분지 하나를 이루어내고 있었다. 그래 밖에서 보면 그 안이 잘 보이지 않았고, 사람들 발길도 뜸한 곳이어서, 조운이 여러 해를 두고 은밀한 작업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은 어느 누구도 쉬 알지 못할 것이었다.

그러나 너무나 무모한 짓이었고 불가항력이었다. 대나무를 잘라 기본 골격을 만들고 무명천으로 날개를 다는 것까지는 그런 대로 된 것 같은데, 솜뭉치로 머리를 만드는 게 쉽지가 않았고, 더욱이 사람이 올라타도 내려앉지 않게 받치거나 버텨줄 수 있는 틀을 설치한다는 건 여간 힘든 노릇이 아니었다. 특히 그것을 날아오르게 할 추진 장치만 생각하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리는 듯했다. 어릴 때부터 공중 높이 날리며 놀던 연과는 전혀 달랐다. 차라리 살아 있는 새를 만드는 게 더 수월할 것 같았다. 하늘을 나는 수레라니? 수레를 끄는 말이나 소가 웃겠다.

그러함에도 조운은 고을 곳곳에서 베어와 쌓아놓은 대나무더미 속에서, 밥 먹을 생각도 잊어버리고 혼자 작업에 몰두하였다. 하루해가 메추리 꽁지같이 짧았다. 그럴 때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또 옆에서 격려를 해주기도 하는 사람이 바로 조운의 옆집에 사는, 조운보다는 두 살이 밑인 김둘님이라는 처녀였다. 하지만 그녀는 조운의 마음 깊은 곳에 한 여자가 숨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조운 스스로도 몰랐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어릴 적부터 낮은 흙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아온 두 사람인지라 오누이 같은 정을 나눈 그들이었다. 여동생이 없는 조운은 둘님을 친 여동생처럼 여겼고, 오빠가 없는 둘님 또한 조운을 친 오라버니 마냥 대했다. 그렇지만 남은 남인지라 점점 나이가 차면서 두 사람은 내외까지는 아니어도 이성으로서의 감정을 느껴가는 건 당연하고 바른 이치였다. 무엇보다 언제부턴가 둘님이 조운에게 말을 높이고 있다는 게 그 증거였다.

둘님이 자다가 껴안은 베개는 조운의 변신이었다. 조운의 몽정에는 둘님의 벗은 등이 보였다. 하지만 잠에서 깨어났을 때 느끼는 두 사람의 감정은 너무나 상반되었다. 둘님이 당장 조운에게로 달려가고 싶은 반면, 조운은 둘님으로부터 멀리로 도망치고 싶었다. 바로 둘님도 모르고 조운 자신도 모르는, 조운의 마음속 그 여자 때문이었다.

그들이 모르는 것은 또 있었다. 어떤 그림자 하나가 언제나 멀리 숨어서 자신들을 훔쳐보고 있다는 사실이 그것이었다. 샛노랗게 번득이는 눈빛. 뿌드득 갈고 있는 이빨. 확 달려들어 마구 할퀼 것 같은 때 낀 긴 손톱. 때로는 한쪽 발에만 끼워져 있는 검정고무신.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극히 비정상적인 숨소리와 옷매무새. 특히 그 그림자는 낚아채가기 위해 병아리 몸 위에 드리워진 솔개 그림자처럼, 둘님의 몸을 겨냥한 채 거두어질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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