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야 면장을 하지
알아야 면장을 하지
  • 경남일보
  • 승인 2014.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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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재 (문학박사,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말 가운데에는 그 의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쓰는 용어가 적지 않다. 흔히 말하는 “알아야 면장을 하지”라는 말도 그런 부류에 속하는 말이다. 이때의 ‘면장’을 흔히 ‘면장(面長)’ 즉 시나 군의 하부 행정단위인 면(面)의 책임자로 이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만약 여기서 말하는 면장이 ‘면장(面長)’이라면 왜 굳이 ‘면장’만 ‘뭘 좀 알아야 할 수 있는 자리’라고 말하겠는가. 시장, 군수, 동장이 얼마나 자존심 상해하겠는가 말이다.

사실 이 말은 논어 제17편 ‘양화(陽貨)’에 실려 있는, 공자와 그의 아들 백어(伯魚)와의 대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공자가 아들에게 “너는 주남(周南)과 소남(召南)을 배웠느냐? 사람이 되어서 주남과 소남을 배우지 못하면 바로 담벼락(牆)에 얼굴을 붙이고(面) 서 있는 꼴이 되느니라”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주남과 소남은 시경(詩經) 첫머리에 나오는 글의 편명(篇名)으로, 주로 수신(修身)과 제가(齊家), 즉 자신을 수양하고 집안을 잘 다스리는 데에 유익한 일상생활의 기본지침으로 이뤄져 있다.

나는 공자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 실제로 벽에 이마를 붙이고 서 본 적이 있는데, 그때 그저 모르는 일에 대한 단순한 답답함을 느끼는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왠지 모를 일종의 두려움까지도 느껴질 정도의 답답함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공자의 표현력에 감탄을 금치 못한 적이 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독자 여러분께서도 지금 당장 벽에 이마를 붙이고 서보라고 권하고 싶을 정도니 말이다.

어쨌든 이렇게 서있는 모습을 형용하는 말이 바로 ‘장면(牆面)’이고, 이런 꼴을 면한다는 말이 바로 ‘면장(免牆)’, 즉 ‘벽에 얼굴을 붙이고 서있는 꼴을 면한다’는 말이다. 요컨대 ‘알아야 면장’이라고 할 때의 ‘앎’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기본적 도리를 말하는 것이고, 그것을 모르면 담벼락에 이마를 붙이고 서있는 것과 같다고 공자는 말한 것이다.

‘논어’라는 책에 제일 먼저 나오는 글자가 ‘학(學)’인데, 우리는 이것을 ‘배울 학’이라고 읽는다. 이 ‘학’자는 수학(數學)이나 과학(科學) 등과 같은 용어로 결합되어서 사용되는 바람에 아주 어렵고 복잡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없지 않지만, 사실 ‘배움’이란 복잡한 공식을 외워서가 아니라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서도 알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기본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어떤가, 새해엔 ‘학(學)’ 한 글자를 화두로 삼아 ‘면장’ 한 번 해보는 것이.

김익재 (문학박사, 경상대 남명학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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