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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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1. 둘님, 사랑이어라
어쨌거나 이날도 둘님은 실패를 하고 대나무더미에 맥없이 앉아 있는 조운에게 온갖 위로의 말을 건네주기에 바빴다. 너무나 천성이 어질고 여린 그녀는 크고 새까만 두 눈에 눈물까지 그렁그렁한 얼굴로 말했다.

“오라버니, 너무 그렇게 상심하지 마세요, 예? 언젠가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니…….”

조운은 잠자코 고개를 내저었다. 총기 넘쳐 보이던 눈도 생기를 잃고 풀어져 있었다.

“아냐. 내 능력의 한계가 여기까지인 모양이야.”

급기야 둘님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또르르 굴러내려 저고리 앞섶과 치맛자락을 적셨다. 조운은 대나무 꼬챙이며 마끈이며 연장에 할퀴고 죄고 찍히어 상처투성이인 두 손으로 머리칼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내가 미친 놈이야. 사람이 어떻게 새처럼 날 수가 있겠냐고? 저것들을 연같이 날릴 생각을 하다니? 정신이 나가도 이렇게 나간 인간은 없을 거야!”

“아니에요, 오라버니! 오라버니는 누구보다 훌륭한 천재예요.”

둘님은 조운을 진정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하지만 설혹 나라님이 와서 달랜다고 해도 소용이 없을 듯했다. 급기야 조운은 벌떡 일어나더니 대나무더미 위에서 발을 함부로 굴리며 광인처럼 소리를 질러댔다.

“흥! 나 같은 놈이 어떻게 나라를 건질 귀인을 구할 수 있단 말이야? 모두 다 그 돌팔이 중놈이 지어낸 엉터리 소리야! 내 그 중놈을 만나기만 하면 그냥 안 둘 테다!”

둘님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지금 조운은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언제나 과묵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 더욱이 지금까지 그가 한 번도 남을 그렇게 욕하거나 해치는 소리를 하는 것을 보지 못한 둘님이었다. 그녀는 거기 공터를 억지로 외면하며 생각했다.

‘아, 어쩌면 여기가 오라버니 인생을 망치게 할 곳인지도 모르겠구나!’

둘님도 점점 조운처럼 낙담과 허탈감에 빠져들었다. 공터에 어지럽게 널려져 있는 대나무 골격이며 무명천 날개, 제멋대로 뭉쳐진 솜 같은 것들이 무연히 그들을 바라보는 듯했다. 아니, 바람이 불면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내며 놀리는 것 같았다. 마끈이나 화선지, 솜뭉치 같은 것은 어디 날 잡아봐라? 하는 듯 휙 날아가버리기도 했다. 바퀴로 사용하기 위해 가져온 소나무와 참나무 등속도 비바람에 속절없이 썩어 들어가는 게 차마 보기 안타까웠다.

조운은 둘님의 전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조운이 만들려고 하는 비행기구는 곧 둘님의 그것이었다. 설혹 세상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할지라도 둘님은 그럴 수 없었다. 죽어 혼이라도 그 비행기구에 붙어 하늘을 날아오르게 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팔을 잘라 날개로 만들어 붙여 비상할 수만 있다면 자기 한몸 희생할 작정이었다.

“우선 이것부터 좀 잡수시고 저랑 차분히 얘기 좀 해요.”

둘님은 집에서 들고 온 싸리바구니에 담긴 고구마와 과일, 물 등을 근처 댓잎자리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 댓잎자리는 조운의 어깨 너머로 배운 둘님이 대나무에서 따낸 댓잎으로 만든 것인데 마치 멋진 방석 같았다. 싸리바구니는 조운이 만들어 둘님에게 선물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조운은 둘님의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계속 하던 짓을 멈추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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