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3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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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1. 둘님, 사랑이어라
그때 들려온 둘님의 말에 조운은 정신이 돌아왔다.

“제가 아버지께 몇 번을 부탁드렸었거든요. 혹시라도 하늘을 날 수 있는 비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알아봐주시라고요.”

둘님의 아버지 김학노는 원래 조운의 아버지 술명처럼 농사를 짓던 사람이었는데, 몇 해 전부터는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면서 큰 보부상을 하고 있었다. 돈도 꽤 많이 모아 그가 거느리고 다니는 보부상들도 여럿 되었다. 그래 천지 안 다니는 데가 없다 보니 별의별 사람을 다 만난다고 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둘님이 각별히 부친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난다는 게 수월한 일이 아니에요.”

둘님의 얼굴이 그믐달 아래 서 있는 나무처럼 밝지 못했다. 조운이 얼른 물었다.

“왜? 잘 안 만나준대?”

“그것도 그렇지만…….”

말끝을 흐리는 둘님에게 안달 난 얼굴로 조운이 달라붙었다.

“그러면? 어서 말해 봐.”

둘님이 걱정스레 말했다. 늘 명랑했던 목소리도 얼굴만큼이나 창백해진 듯했다.

“오라버니가 너무 힘드시고, 또 위험한 것 같기도 해서요.”

“그런 건 아무 상관없어. 그 일을 해내자면 그 정도 어려움은 이겨내야 할 거라고 이미 각오하고 있어. 그보다도 그 사람, 지금 어디 살고 있대?”

조운은 당장이라도 그 사람이 있다는 곳으로 달려갈 태세였다. 문득 둘님이 기습처럼,

“저도 오라버니랑 함께 떠나면 안 될까요?”

“뭐라고? 함께 떠나?”

조운은 그만 크게 당황하고 말았다. 다친 부위에서 피가 솟구쳐나오는 기분이었다.

“아, 말도 안 돼. 어떻게 우리가 같이……?”

둘님이 옷고름이 떨어져 나가고 없는 저고리 앞섶을 여미며 혼잣말처럼 이랬다.

“오라버니 혼자 그 먼데로 보내긴 정말 싫은데……. 저, 하루라도 오라버니 얼굴 못 보면, 못 살 것 같은데…….”

조운은 푸른 댓잎자리만 내려다보았다. 대꼬챙이에 찔린 상처가 욱신욱신했다.

“금방 다녀오면 되지 뭐. 거기도 우리 조선 땅일 테니까.”

그런 소리가 변명처럼 조운의 입에서 나왔다.

“혹시 오라버니하고 같이 가줄 수 있는 사람은 없나요?”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어? 너나없이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판에…….”

조운이 씩 웃었다. 공허하고 씁쓰레한 웃음이었다. 둘님 마음이 갈라지는 듯했다. 그녀도 몰라서 한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든 조운을 먼 다른 고장까지 혼자 보내고 싶지 않아서였다. 손가락을 베어내도 그렇게 허전할까?

“사실 난, 동생들에게도 면목이 없거든.”

조운의 말에 둘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조운은 남자만 삼형제였다. 그의 밑으로 천운과 지운이 있었다. 그의 부모는, 하늘의 운수를 받아 태어난 아이라고 둘째에게는 천운이란 이름을, 땅의 운수를 받아 태어난 아이라고 셋째에게는 지운이란 이름을 붙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천지운을 받은 그들에게 닥쳐올 불운을 조운은 상상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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