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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논란 앞에서 바위불상을 떠올리다(49) 이명산 마애불을 찾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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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1.16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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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사든 현대사든 역사는 오늘의 삶을 위한 교훈이 되고 오늘의 삶의 기록이 훗날의 역사가 되어 미래의 삶의 교훈과 지표가 된다. 그래서 역사는 자랑스럽든 수치스럽든 솔직해야 하고 좋든 궂든 사실이어야 한다. 고등학교 한국사교과서가 교육부의 검정과정에서부터 부실과 왜곡의 논란이 심하더니만 이제는 교육부가 최종적으로 검정한 8종의 한국사교과서 선택을 두고 이념의 난타전에 학교마다 곤혹스러워서 한국사과목을 아예 1년 뒤로 미뤄버린 학교가 많다. 역사의 왜곡은 사학자들의 탓만도 아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일도 사흘만 지나면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우리 모두의 탓이기 때문에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팍팍한 일상의 탓으로 돌려버리며 내가 알바 아니라는 잔인한 이기심이 훗날을 어둡게 한다. 오늘을 명백하게 기억해 두지 않으면 내일은 또 어제의 기록인 역사가 승자나 권력자의 편에서 왜곡된다. 역사의 평가는 후세가 두고두고 해야 할 과제이기에 오늘은 사실만의 기록에 성실해야 한다. 답답한 마음에 짚이는 데가 있어 길을 나섰다.

소설 ‘산하’에서 “태양에 바래지면 역사가 되고 월광에 물들면 신화가 된다”라고 하신 나림 이병주선생을 찾아뵐 요량으로 진주에서 2번국도인 경서대로를 따라 북천으로 길머리를 잡았다.

북천은 코스모스축제의 유명세로 특별한 길안내를 요하지 않는 곳이지만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에선 단성IC에서 덕산방향의 칠정삼거리에서 옥종을 거치면 지름길이고, 남해고속도로에선 곤양 또는 진교IC에서 1005번도로의 께사리재를 넘으면 빠른 길이다. 도깨비 난장판을 방불케 했던 각설이들도 명년에 또 오마하고 어디론지 떠나갔고, 추억을 못 잊은 옛 친구들도 잡았던 손을 놓고 제 갈 길로 떠난 지 오래인 지금은, 멀리 지리산의 차가운 눈바람이 목덜미 속으로 파고들어도 쫑긋한 굴뚝에서 하얀 연기를 모락모락 흩날리며 장작불이 “따닥따닥” 타오르는 난로가 되어, 우리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이병주선생의 옴쏙한 품이 있어 북천은 언제나 포근한 곳이다.

하동방향의 북천역 날머리쯤에서 좌회전으로 철길 건널목을 건너서 가다보면 ‘이병주 문학관’ 이라는 커다란 안내판이 길마중을 나와 섰고 이내 너른 ‘ㄱ’자형의 검정색 지붕이 중후한 멋을 풍기는 커다란 2층 건물은 널따란 주차장과 시원스럽게 펼쳐진 뜨락을 마련하고 찾는 이를 반긴다. 굵은 뿔테안경을 큼지막하게 눌러쓰신 선생의 흉상이 대리석 기단 높다랗게 황동으로 조성돼 있어 다가서서 깊숙하게 고개를 숙였다. 1921년 하동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유학중에 학병으로 동원돼 중국까지 갔었고, 8·15 해방과 남북의 분단 그리고 6·25동란과 빨치산, 자유당 시절과 4·19와 5·16, 3선 개헌과 10월 유신, 이어지는 12·12사태와 5·18의 광주, 숨을 돌릴 틈조차 없이 연속되는 격변과 격동의 시대, 그리고 질곡의 역사 속에서 정론직필의 사설로 5·16 혁명재판소로부터 10년형 선고와 2년7개월의 수형생활 등 선생의 소설보다 더 파란만장했던 당신의 삶이 대한민국의 진솔한 현대사였다. ‘관부연락선’ ‘지리산’ ‘산하’ 등 장·중·단편과 대하의 역작들을 80여 편이나 쓰셨고, 지리산의 남쪽 경상도의 벽지마을을 배경으로 ‘별이 차가운 밤이면’의 끝은 끝내 맺지 못하고 별이 차가운 밤에 작고를 하셨으니, 일제강점기의 식민시대의 처절한 삶의 주인공 박달세의 복수는 우리들이 풀어야할 한으로 남겨졌다. 학술세미나, 문학캠프, 백일장, 국제문학제, 문학관 초대전 등 연중 빼곡한 일정에도 최중수 관장의 자상한 안내는 연일 이어지고 있어 역사의 준엄한 교육의 현장에서 문학의 심오한 정서에 젖게 한다.
 

왔던 길을 돌아서 나와 다시 이명산 마애불의 안내 표지판이 어딘가에 있겠지 하고 ‘께사리 재’라는 고갯길을 굽이돌아 오르자, 불경소리가 은은하게 퍼지는 옴쏙한 작은 골짜기 입구에 ‘달마갤러리 성불사’라고 쓰인 커다란 표지석이 있어, 내친걸음이니 마애불의 정보도 얻을 겸 찾아 들었다. 패널건물 두어 채가 정갈하게 자리를 잡았는데 찻소리를 들었는지 헌칠한 키에 누비장삼을 입은 스님이 합장으로 반기셨다. 사방을 두리번거리자 눈치 빠른 스님은 법당은 뒤쪽 건물이라며 우선 들어오래서 따라드니 널따란 방 두개가 중문으로 이어졌고, 향내음 보다 더 진하게 먹물냄새가 그윽한데 사방의 벽면에는 달마도가 빼곡했다. 지필묵이 가지런한 탁자를 마주하고 예를 갖추고 좌정을 하며 벽면에 빼곡한 달마도를 둘러보는데 필자도 따라서 웃고 있다는 것을 한참만에야 알았다. 지금껏 꽤나 많은 달마도를 보아 왔지만 예 같은 달마도는 처음이었다. 성낸 모습도 아니요 심술궂음도 아닌 천진난만한 유아가, 이가 나지 않은 잇몸 안으로 발그레한 혓바닥을 보이며 웃는 모습 그대로였다. 조계종 총무원장과 전계대화상 겸 원로회의 의원을 역임하고 열반하신 성수스님의 법상자이고, 통도사에서 스물일곱의 늦깎이로 법명 법기라는 대답은 차를 한참동안 마시면서 얻어 내었지 참으로 말이 없었다. 부처의 자비는 무한하지만 가진 것 없는 빈도는 과연 중생에 무엇을 베풀 수 있을 것인가를 두고 자괴감에 빠져서 방황하며, 득도의 길이 요원함에 많은 갈등과 번민 속을 헤매던 때에 번뇌를 떨치려고 면벽하며 용맹 정진하던 어느 날, 달마대사의 또렷한 존영이 웃는 모습으로 벽면에 끝없이 나타나기에 웃음이 만복의 근원인지라 “바로 이거다” 하고 그 때부터 그려왔다 했다. 달마도 말고도 생활 도자기와 장식용 도자기가 즐비하기에 물었더니 힘들어 하는 불자들을 위한 부적을 그려 넣으려고 빚는다고 했다.

스님이 일러주는 대로 가던 길을 한 모롱이 더 돌아서자 약수터가 빤히 보이는 모퉁이에 오른편 산길을 따라 오르면 마애불이 있다는 표지판이 진작부터 나와 있었다. 머잖은 길이라 바쁠 것도 없는데다 서출동락이 명약수라 했으니 약수부터 한 모금 쭈-욱 들이켰다. 엄동설한이라 입안이 어리어리 시릴 줄 알았는데 시원스럽고 부드러워 감칠맛이 났다.

산길로 접어들자 울창한 소나무 숲이 하늘을 뒤덮었고, 등성이를 따라 오르는 길은 짙은 황금색의 솔가리가 푹신푹신하게 바닥을 깔고 있어, 갈퀴로 긁어모아 다독다독 재워서 그 옛날 시골집 아궁이에 다시 한 번 불을 지피고 싶을 만큼 지천으로 깔려있다.
 

고도가 점차 높아지자 너덜바위들이 여기저기서 쭈뼛쭈뼛 목을 빼고 내려다보는데, 코가 닿을 듯이 경사가 만만치를 않았다. 거친 숨도 고를 겸 다리를 잠시 쉴까 했더니, 마애석좌불은 오른쪽 골짜기를 가로 질러가라고 이정표인 표지판이 팔을 길게 뻗고 심산에 홀로섰다. 예서부터는 골짜기를 가로질러 산허리를 끼고도는 평평한 길인데, 너덜겅의 반반한 돌을 쌓고 깔았건만 천년세월에 닳고 헐어서 흔들거리고 덜컹거려 간간이 걸음걸이를 휘청거리게 한다. 골짜기 전체가 온통 돌너덜인데 구들장 같이 얄브스름하고 도래방석만큼이나 넓죽넓죽한 회색빛의 돌들이 지천으로 깔렸다. 그러고 보니 듬성듬성 커다란 바위들은 하나 같이 시루떡을 켜켜이 쌓은 것 같이 얇은 층으로 결이 나있어 세월에 부대낀 결이 켜켜이 떨어져 나와 너덜을 이룬 모양이다.

너덜겅의 골짜기를 또 하나 넘어서자 커다란 바위 절벽이 시야를 막아섰다. 바위상단은 삐죽삐죽 켜켜이 층을 지워 앞으로 내밀어 처마같이 비 가림을 하고, 중간쯤에서 바위를 뚫고 얼굴부터 볼록하게 밀고 나오는 것 같은 양각의 마애불이 왼손을 무릎에 얹고 바른손은 가슴높이로 들고 좌정하고 계셨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아미타여래좌상으로 경남도 유형문화재 136호라고 안내판이 일러준다. 조성취지야 알 수 없으나 북풍한설 마다않고 북향하여 좌정하고 한결 같은 천년세월 국태민안 국리민복 주야장천 빌어주신다 싶어 합장삼배의 예를 갖추고, 불상의 눈길 간곳으로 돌아서니 뒤편의 석굴사지 쪽으로 바위에 음각된 고세대(高世臺)의 뜻과 같이, 발끝 아래서부터 일망무제로 가물가물한 중중첩첩의 준봉들이 머리를 조아렸다./지역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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