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차린 밥상위의 화룡점정 '장'
진심으로 차린 밥상위의 화룡점정 '장'
  • 임명진
  • 승인 2014.01.28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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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지리산 한방골 오덕원 김애자 원장
 
 
 
 
“우리 엄마들이 가족을 위해 정성들여 차린 밥상이 가장 훌륭한 한식이자 전통요리가 아닐까요”

먹거리에도 웰빙바람이 뜨겁다. 웰빙이란 단어가 등장하고 나서 전통요리연구가 김애자(57)씨도 덩달아 바빠졌다.

방송 매체에도 등장하고, 전통요리 강사로 대학에도 출강하면서 전국 각지를 돌다 보니 이제는 김 원장의 요리비법을 배우려고 일부러 산청을 찾아오는 이들도 많다.

좋은 음식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김 원장이 전하는 좋은 음식 만드는 비법은 간단명료했다.

자식을 위해 요리하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좋은 재료로 정성들여 만들면 그게 바로 좋은 음식이라는 거다.

이런 간단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답답하고 억장이 무너질 때가 많다고 했다.

“먹는 음식에 편법을 써서는 안 됩니다. 음식에 대한 예의를 잊고 먹으니 좋은 음식이 나올 수가 없는 거죠”

언중유골이다. 김 원장의 말 속에는 뼈가 있다.

지리산이 지척인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양수발전소가 훤히 마주 내려다보이는 건너편 산중턱에 김 원장의 보금자리, 오덕원이 자리 잡고 있다.

김 원장이 수 년 동안 심혈을 기울이며 따온 이름인데, 심오한 음식 철학이 담겨 있다.



오덕(五德)이란…

단심(丹心)으로, 다른 맛과 섞여도 고유 향미와 자기 맛을 잃지 않으며

항심(恒心)이니, 오래도록 상하거나 변함이 없으며

불심(佛心)이라, 비리고 기름진 냄새를 없애면서 본래의 자양은 생선이나 고기보다 못하지 않다.

선심(善心)으로, 매운 맛이나 독한 맛을 중화시켜 부드럽게 해 준다.

화심(花心)이라, 어떤 음식과도 조화를 이루고 자연과의 동화를 이룬다.



꾸불꾸불 산길을 한참 힘들게 올라 오덕원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400개 남짓의 장독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다.

그 풍경이 주변의 산세와 어울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김 원장은 전통방식대로 전통 된·간장을 만들어 낸다.

전통요리 마니아들에겐 오덕원은 이미 꽤나 유명하다.

김 원장의 전통음식에 대한 열정과 좋은 식재료에 대한 집요함 덕인지 거쳐 간 이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요즘같이 약삭빠른 시절에 번거롭고 온갖 정성이 들어가야만 하는 전통장이라니.

전통된장·간장, 고추장, 찹쌀조청, 약초장아찌 등마다 엄선된 재료와 김 원장의 정성어린 손길이 가득 담겨 있다.

2층 건물의 김 원장의 보금자리는 온통 메주세상이다. 그 양만 31톤 분량이라는 데, 메주를 쑤기 위해 가마솥 25개를 내건다.

한꺼번에 내걸 공간이 나지 않아 이동식으로 해서 메주를 쉈다고 한다.

이렇게 만든 메주는 전부 친환경 농산물업체인 한살림에 공급한다.

김 원장을 따라간 1층 발효실. 새끼줄에 걸려 있는 메주엔 하얀 균이 피어 있다.

김 원장은 “바실러스 균이라고 하는데 발효과정에서 이 균이 잘 맺혀야 독특한 우리 된장 맛이나 향기, 항암물질이 생긴다”고 했다.

“두 달째 발효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거의 끝나가는 단계에요. 그 다음엔 잘 씻어서 9개월 동안 장독대에 들어가게 됩니다”

넓디넓은 앞마당에 빼곡히 들어찬 장독대 마다 웬 작은 돌멩이들이 놓여 있다. 개수에 따라 나이를 표시했다. 돌멩이 3개는 3년, 4개는 4년 된 장이다.

오덕원에서 생산되는 장아찌.

유난히 병치레가 잦았던 김 원장. 전통음식에 빠지게 된 사연과 힘들고 어려웠던 지난날을 마치 남의 일인 마냥 술술 풀어내기 시작했다.

태어날 부터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던 김 원장. 10살 때에야 간신히 초등학교에 들어간 그녀는 부모님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자라났다.

“아버지가 군인이셨어요. 5남매 중에 가장 몸이 약한 저를 신경을 많이 쓰셨어요. 당시만 해도 영양제가 따로 있었나요. 농약을 안 친 좋은 식자재로 만든 음식을 자주 먹이셨어요”

아버지의 부임에 따라 전국을 돌아다니다 보니, 요즘으로 치면 각 지역의 천연 유기농을 고루 섭취한 셈이다.

“그렇게 먹다 보니, 저절로 입맛이 까다롭게 길들여진 것 같아요. 화학조미료가 들어간 음식은 못 먹다보니 다른 집 밥을 잘 안 먹어요”

성인이 되고나서는 전국을 다녀보고 괜찮다는 음식을 직접 먹어보고 만들기도 했다.

특히 모든 요리에 들어가는 양념인 전통발효음식인 전통 장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어릴 적에 할머니들이 담근 장이 정말 맛있어요. 우연히 곱디고운 할머니들이 장을 담그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그걸 보려고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어요. 문득 든 생각이 아! 나도 나중에 저 할머니들처럼 음식을 전수를 해야지 마음먹었지요”

요리를 하면 할수록 전통발효 음식인 된장과 간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깨 닫았다.

“옛날부터 그 집 장이 맛있으면 모든 음식이 맛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음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양념인데, 그중 된장과 간장이 음식의 출발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헌데 된장을 콩으로 메주를 쑤고, 음식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최소 4년이란 시간이 걸린다. 그러니 전통장이 설 자리가 없다.

경제적 비용은 물론 값싸고 손쉽게 구입 가능한 개량된장에 판로개척도 어렵다.

그래서 오덕이란 이름엔 김 원장의 뚝심이 묻어났다. 영리목적이 아닌 오로지 음식만으로, 전통방식을 따라가기 위한 김 원장의 의지가 반영돼 힘들게 지은 이름이다.

김 원장은 “자기가 정한 길을 지켜가는 게 제일 중요하고 또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오로지 음식 하나만 가지고 해야 되니 힘들고 고달프다”고 토로했다.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오덕원에서 김 원장의 요리 지도를 받았다.

그중 김 원장이 연구원이라고 이름붙힌 제자는 손에 꼽는다.

전통 발효음식인 된장의 모든 것을 가르치는 데 걸리는 시간만 4년. 여기다 약선 요리까지 어떤 이는 10년째 배우는 이들도 있다.

“음식 조리만 배우려고 하니 안 되는 거죠. 청국장은 햇볕에 말리면 간암을 유발하는 아플라톡신이 생길 수 있어요. 그래서 예전 엄마들은 항아리 안에도 보관을 했는데, 그런 원리조차 모르면서 청국장 만드는 법을 배워봐야 뭐하겠어요”

농사일을 배운 사람은 농부로 살고, 물고기 잡는 법을 배운 사람은 어부로 살듯이, 요리를 배운 사람이 정말로 한 사람의 전통 요리가로 설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김 원장의 요리 철학이다.


글=임명진기자·사진=오태인기자


김애자 원장이 발효시키는 콩을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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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빈엄마 2023-01-01 17:49:27
정말 대단하시네요~~ 훌륭하신 명인이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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