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날 우리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겨울날 우리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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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이석기의 월요단상>
이렇게 매서운 추위가 계속될 줄 알았다면 지난계절에 있었던 우리의 변덕을 미리 뉘우치지 않았을까? 이른 봄 날씨처럼 흐리다간 햇볕 나고, 햇살이 비치는가 했더니 봄비 뿌리며, 그래서 흐리고 개임을 미리 짐작하지 못한 우리의 감성은 초라하기만 했었다. 그래도 모진 신고 끝에 나무는 움이 돋아 잎도 피고 꽃도 피었지만, 우린 초목만큼 현명하고 지순하지 못했기 때문에 어찌 그런 변덕을 잘 활용할 줄 알았으랴. 오직 우리 영혼에 발진 (發疹)만 돋아나 쓰린 고통 외엔 그 무엇도 얻은 건 없었다.

그럼에도 서로가 안 그런 척, 유유한 듯, 여유 있는 척,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받는다는 것은 한 가닥 봄바람이 머리칼을 날리고 지나가는 정도라고 치부(置簿)하진 않았는가. 한 송이 봄꽃이 우리의 눈길을 잠시 붙잡았다간 놓아 버리는 정도라고 가볍게 여기지는 않았는가. 어쩌면 그런 생각 그런 위장이 자신을 속이는 거짓인 줄도 모르면서 우린 얼마나 자신을 높여왔던가. 그 흔적이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고, 그 생채기가 아물기에는 오랜 세월이 걸린다는 것을 이제 와서 겨우 깨닫게 될 줄이야. 과연 그러고도 우리가 영명하고 순수하고 슬기롭고 관대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 잠시 잠깐 보랏빛 아지랑이에 넋을 홀렸다 할지라도 지난 여름철은 또 어떠했는가? 고백하건대 우린 참으로 비겁자였다. 높이 세워 놓은 우리의 자존심, 그 그늘에서 우리는 진정한 용기까지 상실하였으며, 자존심이 무엇이며 용기가 무엇인지 아마도 우린 몰랐으리라. 자존심과 용기가 어떻게 공존하고 병행한다는 것을 우린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깐. 용기란 오르지 사랑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의연한 척 위장하는 그런 것인 줄로만 잘못 알고 있었을 테니까.

사랑이 아름답다는 건 고통을 극복한 노력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이고 체험적, 감동적인 사랑 또한 영혼의 성숙에 다다르게 한다는 걸 왜 몰랐을까? 아니 알면서도 자기만은 예외인 듯, 사랑 그것을 부인해온 탓일 줄이야. 이 세상에 인간이 존재하고부터 사랑이란 것이 있어 왔다면, 그때부터 반드시 거치지 않으면 안 되어 온 그 고통을 우린 거부하려 들지는 않았으리라. 그래서 굳은 결심을 하고도 아니라고 고개 저어 완강히 부인해 온 만큼 정직하지 못했던 우리들. 때문에 한 번도 저 여름 대낮 불볕같이 솔직해 본 적이 없고, 자기감정을 표현하며 불태워 본적도 없었으리라.

우리가 이성과 정열을 잘 다스려 가을 햇볕에 성숙된 연정을 이어 와서, 좋은 열매를 거두어들일 수 있었다면, 이 겨울 얼음장 두꺼운 가슴 바닥에 실낱같이 흐르는 그리움 한 줄기로 추운 겨울을 어리석게 살지는 않았으리라. 아니 우리는 영악하여 자신을 허물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봄이 되면 우리 가슴에 풀잎이 돋아 꽃이 피고, 따스한 기운이 스며들리라 생각조차 못했는지도 모른다. 아! 그러나 겨울 신이시여, 매운바람에 채찍질 당하면서도 탐욕을 속죄하고 서 있는 겨울나무처럼 우리 역시 고행의 도를 닦으며 자신의 넋을 구원받을 수 있는 삶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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