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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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2. 끈이여 운명이여
둘님이 울고 광녀가 웃는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광녀가 울고 둘님이 웃는다. 아니다. 한 여자의 입에서 웃는 소리도 나오고 우는 소리도 나온다. 결국 그는 귀를 틀어막고 만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함부로 뒤섞인 여자 웃음소리와 울음소리가 그의 심장까지를 파고든다. 그는 질식 직전에 가서야 가위에서 풀려나곤 했다.

그는 서둘러 잠자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러고는 얼른 봉창을 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기다렸다는 듯 우우 몰려들어왔다. 거기 캄캄한 하늘가에 노란 달이 떠 있었다. 둘님의 얼굴같이, 광녀의 얼굴같이.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둘님과 광녀의 얼굴이 사라졌다.

그러자 이번에는 달이 ‘나는 수레’로 변해 보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큰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는 꿈속에서 그게 꿈이란 것을 깨달았듯, 이제는 현실 속에서 이게 현실이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수레’가 다시 원래의 달로 돌아가지 않기를 애타게 빌었다. 그는 달, 아니 ‘나는 수레’에 올라탔다. 그러고는 동녘 하늘이 말갛게 터올 때까지 별들 사이로 끝없는 비행(飛行)을 계속하였다.

조운이 악몽과 악몽 후의 기억에 시달리다 현실로 돌아온 것은 김제갑 목사 때문이었다. 그가 근처에 있는 넓고 평평한 큰 바위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앉아 말하는 게 좋겠구먼. 얘기가 좀 길어질 것 같거든.”

“죄송하옵니다, 목사 영감.”

“아니, 아니야. 그 기상이 내 마음에 들어. 그렇지! 사내라면 그 정도 배포와 기백은 있어야지. 암, 그렇고 말고. 계집 같은 사내가 난 딱 질색이거든? 하하하.”

그 말을 듣자 조운의 머리에 또다시 둘님과 광녀 모습이 실체와 그림자같이 떠올랐다. 둘님에 비하면 광녀는 사내 같은 계집이었다. 조운은 그 영상을 떨쳐내며,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하옵니다.”

두 사람은 너럭바위에 나란히 앉았다. 그것을 보고 있던 수행원들 사이에 잠시 소요가 일었다. 평민이 감히 한 고을 최고 실권자인 목사와 자리를 함께하다니. 하지만 목사의 지시가 하도 엄한지라 다가오지는 못하고 그대로 서서 여차하면 달려올 태세만 취했다.

“이제는 말해줄 수 있겠느냐?”

여전히 강압과는 거리가 먼, 그래선지 듣기에 따라서는 부탁조로 들리는 목소리였다. 조운은 갈수록 그를 향한 존경심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났다.

“예, 목사 영감. 모두 고해 올리도록 하겠사옵니다.”

“이거 기대가 되는구먼. 내가 본디 어지간한 일에는 잘 흥분하는 사람이 아니거늘,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로다.”

조운도 이상하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끼어드는 것 같았다. 우선 그와의 만남부터가 그랬다. 그러자 기쁘고 반가운 가운데서도 무섭고 두려운 감정이 뒤따랐다. 그들을 훼방 놓으려는 악귀가 거기 대나무로 죽창을 만들어 찔러올 것 같은 망상까지 덤벼들었다. 조운은 어서 이야기해야겠다는 조급증이 들었다.

그러나 막상 입을 열려고 하니 무슨 말부터 어떻게 꺼내야 할지 너무 난감했다. 자칫 미치광이 취급을 받을 소지가 다분히 있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그를 알고 있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목사 또한 그 자신을 반쯤 정신 나간 놈으로 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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