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에서 느낀 소회
병실에서 느낀 소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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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숙향 (하동 악양초교 교사, 시인)
다소 어려운 수술을 마치고 설 명절 연휴를 병원에서 보내게 됐다. 환자들도 대다수 빠져나간 텅 빈 병실의 적막과 고요에서 쓸쓸하게 보낸 셈이 되고 말았다.

살아 있다는 사실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채근질하며 살아온 필자 자신인지라 입원기간을 특별한 휴식의 기회로 생각하며 먹고 자고 TV보며 소소한 일상에 젖어들려고 무척이나 노력을 했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한번 놓치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세 가지가 ‘시간, 말, 기회’라고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쉬려고 해도 푹 쉬지 못하는 뇌는 늘상 생각에 고인다. 운동을 위해 링거를 달고 각층 병동을 돌며 문득 뇌졸중 환자들의 병동에서 입원한 사람들의 나이의 통계도 헤아려본다. 40대 뇌졸중 입원환자가 가장 많았다. 그 다음 70대, 50대 순이다. 50대를 맞이한 필자의 머릿속에는 하필이면 설날에 이러한 시간을 보내야만 하는 미묘한 감정의 움직임에 긴 한숨도 쉬어 본다.

살아 간다는 건 죽어 없어질 육신을 면밀하게 불태우는 일이라며 쓸데없이 육신을 혹사시킨 필자도 뇌졸중 병동에 들어있지 않은 것만으로도 운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받아들인다. 살아 있는 동안엔 병원생활을 되도록이면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던 어른들의 생각도 이제사 귀에 꽂힌다.

어느 분야에서든 열정적인 프로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도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미 프로가 아니라더니, 무엇을 하든 어떻게 살든 기본에 충실하며 살아가는 사람의 자세가 역시나 프로라는 걸 다시 한 번 되새겨보는 계기가 되었다. 늘 기초와 기본을 따지며 살아 왔다 싶었는데 올해는 특히나 육신의 기초공사에 신경을 써보리라고 병실에서 혼자 주문처럼 외워보기도 했다.

크게 이룬 것 없이 살아 왔어도 고희에 접어드니, 떠들썩한 명예나 권력이 부럽지 않고 평범하고 알뜰하게 삶을 가꾸어 온 사람들에게 따뜻한 시선이 가고 소소한 일상의 행복에 젖어 살고 싶다는 생각에 자꾸만 머문다. 남은 반백년은 주변사람들과 더불어 사람 냄새 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늘상 쫓겨다니는 교육계에서도 전국의 유·초·중·고·대학 교원들은 올해 교육이 나갈 방향을 염원하는 사자성어로 ‘本立道生’(본립도생)을 선택했다고 전한다. 본립도생은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말로 ‘기본이 바로서야 나아갈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성적 위주의 교육을 인성교육 중심으로 전환하고 정치, 포퓰리즘, 톱다운 방식의 개혁에 휘둘리는 교육을 기본과 본질 회복으로 돌아가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공통된 현장 정서가 묻어난 결과다. 현 정부가 추구하는 꿈과 끼를 살리는 행복교육은 인성과 지성을 겸비하는 기본이 바로서야 꽃 피울 수 있다는 의미에서 제안된 사자성어이다. 망망대해 우주를 출렁거리며 한바퀴 돌아온 교육계에서 다시 기초와 기본교육에 충실하자는 목소리가 짙은 것이다.

이런저런 소회로 필자 머릿속 올해 새해벽두의 화제는 인간의 삶에 가장 근간이 되는 ‘기초’와 ‘기본’의 충실에 머문다.

최숙향 (하동 악양초교 교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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