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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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2. 끈이여 운명이여
그런데 김제갑 목사는 결코 지위를 앞세워 채근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기다릴 뿐이었다. 조운은 그에게서 대나무뿌리 같은 굳건함과 강인함을 느꼈다.

‘아, 나는 둘님과 광녀 사이에서 가마못 물풀같이 흔들리는데…….’

그런 목사가 감당키 힘든 현실에 부대끼고 있는 조운에게 조금은 침착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갖게 해주었다. 조운은 비행기구를 만들 때만큼이나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지금부터 제가 올리는 말씀을 들으시고, 크게 화를 내시거나 벌을 내리신다고 해도, 저로선 어쩔 수가 없는 일이옵고…….”

그 말에, 목사가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가 무슨 소리를 해도 나는 절대 성을 내지 않을 것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고하라. 있는 그대로를 말일세.”

싱그러운 대나무 향기가 콧속으로 스며듦을 느끼며, 조운은 겨울 바람에 떨리는 문풍지처럼 떨려 나오는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구를 만들려고 하옵니다.”

순간, 목사가 백치 같은 멍한 얼굴을 했다.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무어라? 사람이 하늘을 난다고?”

목사는 너럭바위에서 벌떡 일어설 것같이 보였다. 흡사 귀신소리를 들은 사람 같았다. 안면에는 미세한 경련까지 일고 눈빛도 크게 흔들렸다.

“예, 그렇사옵니다.”

그때 검은 대밭 속에서 무슨 기척이 새어나왔다. 그 움직임이 제법 큰 것으로 봐서는, 대숲에 가끔씩 보이는 고라니인지도 모르겠다. 상돌이나 광녀가 와 있다면?

“아, 가만, 가만…….”

조금 전에 그가 한 말처럼 어지간한 일에는 동요하지 않을 것 같은 김제갑 목사도 그만 혼란스러운 빛을 어쩌지 못했다. 그는 거기 반석이 아니라 험하게 겹쌓인 츠렁바위에 올라선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한 번 더 고해 보라.”

목사 눈빛이 매섭게 바뀌고 있었다. 민심을 어지럽히는 요사스럽고 허랑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보는 건지도 모른다. 조운은 가슴이 졸아붙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와 버린 말이었다. 죄인이 엎드려 사약을 받는 심정으로 고했다.

“사람이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구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씀 올렸습니다.”

목사는 먹물을 듬뿍 찍어 바른 듯한 눈썹을 그러모으고 빛살이 쏟아지는 허공 어딘가를 노려보듯 하며 혼잣말을 했다.

“그래, 그렇게 말했었지. 내가 바로 들은 게야. 헌데……?”

목사는 조운의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 눈빛이 대숲처럼 푸르고 깊었다. 그는 남에게 묻는다기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확인시키려는 사람같이 보였다.

“그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자네 신념이랄까 판단을 묻는 거라네.”

조운이 아주 신중함이 묻어나는, 그러나 결코 주저하지 않는 얼굴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불가능하다고는 믿지 않습니다.”

“어렵지만 가능할 수도 있다…….”

그러던 목사가 그들이 앉은 너럭바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뜸 물었다.

“자네, 이 바위를 공중으로 떠오르게 할 수 있다고 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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