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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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2. 끈이여 운명이여
조운이 자세를 좀 더 꼿꼿하게 고쳐앉으며 그 너럭바위같이 묵직한 소리로 고했다.

“제가 그 기구만 만들면 그것도 가능한 일이옵니다.”

목사는 아직도 엄청난 충격과 경악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마치 미끄러지지 않으려는 사람같이 손바닥으로 너럭바위를 짚으며,

“허, 그으래? 기구만 만들면, 기구만…….”

이번에는 조운이 목사에게라기보다 자신에게 일깨워주려는 것처럼,

“우선은 사람을 하늘로 날아오르게 하는 게 더 중요하고 시급하옵니다.”

“그렇겠지. 사람이 가능하면 바위도 가능하겠지. 다른 것들도…….”

목사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음성은 그보다도 더 떨려 나왔다.

“정녕 무서운 일이로다. 그 일의 성사 여부를 떠나,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부터가 진정 예사로운 노릇이 아닐 수 없거늘. 아아! 이건 인간이 인간의 영역을 뛰어넘고자 하는 것인즉, 혹여 천지신명께서 아실까 두렵고 두려운지고!”

그날 조운이 본 광녀의 뽀얀 젖가슴같이 아주 투명한 햇볕이 목사가 타고 온 가마 위에 부서져 내리는 게 손끝에 잡혀들 것같이 느껴졌다. 목사는 한동안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검은 옷을 입은 듯한 오죽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니까 저 평범한 대나무가 그 엄청난 일을 해낼 수 있다, 그 말인가?”

조운의 눈길도 대밭을 향했다. 때마침 그 위로 날아오르는 까마귀와 대밭은 한빛이었다. 대나무가 투영된 검은 눈을 반짝이며 그가 말했다.

“대나무는 기본 골격이 될 것이옵고, 양쪽 날개는 무명천을 쓸 것이옵니다.”

목사가 ‘무명천을 날개로?’ 하며 두 팔을 치켜들고 날갯짓하는 시늉을 하자, 저만큼 떨어져 있어 이쪽 대화를 들을 수 없는 수행원들과 가마꾼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목사 영감이 점잖지 못하게시리 저 무슨 해괴한 몸동작이신가 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렇사옵니다. 화선지도 필요할 것이옵고…….”

하다가 조운은 입을 다물었다. 비행기구를 이동시키기 위한 바퀴로 쓸 소나무와 참나무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다. 아직은 시험 단계라는 자각에서였다.

“허, 이게 정녕 꿈은 아니렷다? 아니, 꿈이래도 이럴 순 없지. 인간이 새처럼 하늘을 날 생각을…….”

목사는 또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한 듯 잠시 눈을 감았다가 도로 떴다. 그러고는 여전히 긴장과 의아함이 서린 얼굴로 이쪽을 응시하고 있는 수행 군사들과 가마꾼들을 한 번 보고 나서 입을 열었다.

“저들이 듣지 못하게 한 건 참으로 잘한 처사로다. 현명한 일이다. 이건 절대 함부로 발설해서는 아니 될 천기라고 봐야 해. 세상에 이런 일이?”

그때 대밭에서 쪼르르 달려나온 것은 고라니가 아니라 몸집이 굉장히 큰 회색 들쥐였다. 어지간한 다람쥐 크기 정도는 돼 보였다. 그놈은 사람들을 보자 가마 밑으로 도망쳤다.

“저를 미친 사람 취급하지 않으시니 감사하옵니다.”

“무슨 소리? 미친 사람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조운은 홀연 울컥 치미는 설움을 억제치 못하며,

“세상 사람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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