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괴짜 CEO 리처드 브랜슨
리차드 브랜슨 |
그는 초·중·고 시절엔 난독증으로 인해 학업에서 별다른 재능을 발휘하질 못했고 결국 열일곱에 학교공부를 중도하차하고 만다. 그가 처음 시작한 사업은 16살에 창간한 Student라는 잡지 발행이었다. 그는 이 잡지의 편집인이자 편집부장, 그리고 광고부장의 역할을 도전적이고도 열정적으로 수행해내었다. 광고를 얻어내기 위해 수백 통의 편지를 쓰는가 하면 당대의 유명한 프랑스 철학가 장 뽈 사르트르라든가 영국의 작가 노먼 메일러를 기고가로 섭외해내기도 하였다. 광고부장으로서는 코카콜라와 로이드 은행의 스폰서까지 얻어내었다. 1970년에는 우편 주문 사업을 시작하였고 1972년에는 음반 판매 체인 사업체인 버진 레코드(후에 버진 메가스토어)를 설립하였다. 브랜슨의 버진 브랜드는 버진 애틀랜틱이라는 항공사의 설립과 버진 레코드 사업을 확장하면서 1980년대에 급속히 성장하였다. 1988년 이후 회사 매출액은 10배 이상 증가하였다. 그는 지난 30여 년 간 신생업체와 새로운 도전정신으로 연간 매출액 40억 파운드의 기업왕국과 세계적 유명 브랜드를 구축하게 되었다.
그는 오늘날까지 ‘사업은 즐거워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고수한다. 브랜슨은 그의 저서 ‘Dr. Yes!’에서 “나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면서 살아왔지만 한 번도 돈을 벌기 위해 사업을 한 적이 없었다. 사업에서 재미를 발견하며 즐겁게 하다보면 돈은 자연히 따라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나는 만약 어떤 일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면, 드디어 다른 일을 찾아야 할 때가 된 것이라고 믿는다. 행복하지 않게 시간을 보내기에는 인생은 너무 짧다”고 항상 말한다. 그는 웨딩드레스와 런던의 대형 웨딩숍을 홍보하기 위해서 얼굴과 다리를 면도하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기자회견을 하는가 하면 자신의 브랜드를 널리 알리기 위해 대담한 모험마저 마다않는다. 쾌속선을 타고 대서양을 횡단하려다가 폭풍우에 휩쓸려 표류하기도 하고 열기구를 타고 세계일주를 두 번이나 시도하기도 했다. 버진 그룹의 기업문화는 ‘재미·혁신·도전’이라는 공유가치를 그 바탕에 두고 있다.
그의 도전적인 기업가정신과 도박사 기질이 늘 성공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그의 사업영역들은 성공·부진·독특함으로 분류해볼 수 있다. 런던을 횡단하는 가장 멋진 교통수단이라 평가받는 오토바이 택시편대인 버진 리모바이크나 웨딩업체인 버진 브라이드는 독특한 사업영역이고, 그룹의 황금거위랄 수 있는 버진 애틀랜틱 항공사와 버진 매가스토아, 금융 서비스 기업인 버진 다이렉트는 성공한 영역이며 아워 프라이스 음반 판매 체인은 가장 많은 투자에도 불구하고 문젯거리가 되고 있고 버진 레일은 실적이 부진한 철도사업이며 1996년에 출범한 버진 콜라 사업은 코카콜라나 펩시콜라의 유통력에 밀려 커다란 적자를 내는 부진한 사업영역이다.
브랜슨은 2012년 포브스지의 억만장자 명단에 들면서 영국에서 가장 부유한 시민으로 알려졌다. “주주가 제일, 고객은 그 다음, 직원이 세 번째라는 생각은 잘못된 것이다. 버진 그룹에서는 직원이 가장 중요하다. 의욕이 넘치고 행복한 직원이 고객을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처럼 그는 인간 중시 경영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그러면서 브랜슨은 영국의 금융 컨설팅업체 핀스버리가 벌이고 있는 ‘유산의 10%를 기부하겠다’는 서약을 유언장에 남기는 ‘레거시10(Legacy10)’ 캠페인에 동참하기도 하는 등 이윤의 사회 환원에도 앞장서고 있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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