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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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2. 끈이여 운명이여
목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렇게 말했다.

“아니, 설혹 자네가 미친 사람이라고 해도 난 상관없어. 그런 놀라운 상상을 해내다니, 도리어 자네에게 큰 상이라도 내리고 싶으이.”

검은 대나무들 사이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온 햇살이 땅바닥에 얼룩덜룩한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조운이 낯을 붉히며 머리를 조아렸다.

“과찬의 말씀이옵니다. 부끄럽사옵니다. 전, 아직도 생각뿐이지 아무것도 이루어낸 것이 없사옵고…….”

대밭 속에서 참새들 지저귀는 합창소리가 들려왔다. 대나무가 검은 빛이어서 그런지 그 소리도 검은 음색을 띤 것 같았다. 목사가 울먹이듯 하는 조운의 말을 끊었다.

“설혹 이루어내지 못한다고 해도 그게 무슨 대수겠는가?”

조운은 목사 몸의 온기가 바위를 통해 그에게로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사람이 그런 엄청난 발상을 해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가슴이 뛰고 대견스러우이. 본관이 책임지고 있는 고을에 자네 같은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게 참으로 자랑스럽고 기쁘다네.”

조운은 그동안 혼자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한꺼번에 가시는 듯했다. 햇살이 마음으로 스며들어 어루만져주는 것 같았다. 목사는 근엄한 얼굴을 했다. 입술이 붉고 귀가 컸다. 그는 한껏 목소리를 낮추었다.

“내 한 가지 꼭 당부함세. 그 일에 대해서는 계속 비밀로 해두게나.”

참새 소리가 뚝 끊어졌다. 세상이 물밑처럼 고요해지는 듯했다.

“자고로 중요한 일에는 악귀가 끼기 쉬운 법, 만사 조심, 또 조심해야지.”

이야기가 길어지자 수행 군사들과 가마꾼들 중에는 다리가 아파오는지 주먹으로 무릎을 탁탁 치거나 장딴지를 연신 문지르는 사람도 보였다.

“나도 그것에 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한 것으로 하겠네. 그리고 그 일이 성공할 날까지 누구에게도 퍼뜨리지 않겠네. 상감이라 할지라도 말일세.”

그 말끝에 목사는 문득 기억해낸 듯 대밭을 보며 이런 이야기를 꺼냈다.

“대나무로 만든 검, 죽검에 대해 혹시 들어봤는가? 죽검은 신검(神劍)이라고도 하지. 무엇보다 사람을 죽이지 않고 살리기도 하는 칼이 죽검이라네.”

조운은 얼른 이해가 닿질 않았다.

“사람을 살리는 칼이라고 하셨사옵니까?”

목사 두 눈에 칼이 번득이는 것 같은 빛이 서렸다.

“액운을 막아주고 병든 사람을 주술적으로 구해주는 검이라니 놀랍지 않은가? 뿐만이 아닐세. 나라가 위기에 처하거나 임금이 제사를 지내거나 할 때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

해가 아까보다 서편으로 제법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바람기도 좀 더 느껴졌다.

“그건 그렇고…….”

긴장감에 싸였던 목사의 낯빛이 그때까지보다 훨씬 더 부드럽게 풀렸다.

“자네 무슨 생(生)인가? 태어난 해를 묻고 있는 걸세.”

까마귀 사라진 대밭으로 막 날아드는 까치들 소리가 요란했다.

“갑인년(甲寅年) 생이옵니다. 정확히 말씀 올리자면, 8월 27일이 되겠습니다만…….”

그 순간, 목사가 크게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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