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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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2. 끈이여 운명이여
“왜 그러십니까?”

조운은 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어쩐지 감격에 찬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가 매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우리 시민이와 똑같아서…….”

대나무들이 마침 불어온 바람결에 몸을 휘며 흔들리자 마치 무수한 죽궁(竹弓)같이 보였다. 조운이 조심스레 물었다.

“시민이라 하심은……?”

만면에 자랑스럽고 믿음직스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목사가 대답했다.

“내 조카를 말함이라네. 자넬 보는 순간, 이상하게 그 아이 얼굴이 떠오르더라니……?”

그 말을 들은 조운의 가슴도 풀쩍 뛰었다. 부모에게서 들은 이야기가 생각났던 것이다. 그가 태어나기 얼마 전에 집으로 시주를 얻으러 왔던 어느 탁발승이 했다는. 충청도 땅 어딘가에서 그와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날 아이와 깊은 인연을 맺고 살아가게 될 것이라는. 그 아이는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할 귀인이고, 조운 자신은 또 그를 구해야 할 운명을 타고난 사람이라는.

그러나 조운은 그 예언을 내비추지 않았다. 시주를 얻으러 잠깐 집에 들른 탁발승이 한 확실치도 않은 그런 이야기를, 목사같이 지체 높은 사람에게 한다는 것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조운 스스로도 아직 그것에 대해 어떠한 확신도 가지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아직은 김제갑 목사의 말에 성급한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김제갑 목사는 여전히 어떤 충격이랄까 감동을 떨치지 못하는 빛이었다. 두 눈이 퍽 부신 듯 하는 것은 비단 햇살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조운의 손이라도 덥석 잡을 것처럼 하며,

“자네와 내 조카를 맺어주고 싶으이.”

댓잎이 서걱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벽오동나무에 둥지를 튼다는 봉황이 대나무 열매를 먹으러 와서 내는 소리가 아닐까, 조운은 그런 생각을 했다.

“둘이 한날한시에 태어났다는 사실부터가 예사 인연이겠는가 말일세.”

인연이란 것에 각별한 의미를 주는 목사에게서 조운은 또 어쩔 수 없이 두 여자와의 인연을 떠올렸다. 어릴 적부터 이웃에 살면서 자연스럽게 맺어진 둘님과의 그것. 그저 동정심에서 연 하나를 주었던 데서 공연한 오해를 산 게 아닌가 싶은 광녀와의 그것.

‘내가 하지 말았어야 할 짓을 했던 거야. 책임도 지지 못할 어리석고 잔인한 행동을. 사리분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미친 여자로 하여금 남자를 가까이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을 심어주고 말았으니…….’

미친 사람도 정신이 온전한 사람과 똑같은 사람일진대, 그렇다면 당연히 저 오욕칠정의 감정결이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한 결과가 아니겠는가? 특히 그날 둘님의 머리채를 낚아채던 광녀에게서 조운은 광기보다도 극히 정상적인 한 여자를 본 듯했다. 그때 약간 의아해하는 듯한 목사 말이 들려왔다.

“왜 싫은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걸 보니…….”

“아, 아니옵니다. 하지만 저 같은 신분이…….”

조운은 어쩐지 제 목소리가 댓잎에 밤비 떨어지는 소리같이 느껴졌다.

“아닐세. 하늘이 끌어주시는 인연이라면 그깟 인간이 만든 신분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안 그런가? 내 생각은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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