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 만에 귀향, 마을 일꾼되다
60년 만에 귀향, 마을 일꾼되다
  • 정원경
  • 승인 2014.0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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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지수면 하촌마을 이규석 이장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내려와 이장을 맡고 있는 이규석씨가 동네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오태인기자
 

 
 
늑대님, 저 좀 살려주세요.”

진주시 지수면 청원리 마을회관에서 글 읽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가자 7명의 할머니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루바닥에 책상을 펼치고 앉아 칠판에 적힌 글을 하나씩 따라 읽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들 앞에는 다소 젊어 보이는 이가 칠판에 서서 글자 한자마다 또박또박 읽어내려가고 있었다. 동아일보 기자·편집국장 대리·판매국장, 국정홍보처 차장, 한국토지공사 감사 등을 역임한 이규석(71)씨의 모습이었다. 몇 년 전만 해도 고위 행정관료였지만 고향을 떠난 지 60년 만에 귀향해 시골마을 이장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그는 공직에서 물러나 집안 종손으로서 일을 하고 싶어 고향을 찾았다.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가장 먼저 글과 숫자를 모르는 할머니들에게 한글과 산수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해 1년 동안 꾸준히 해오고 있다.

이규석 이장은 “우연히 시장에 나갔다가 글을 못 읽어 오는 버스마다 반성에 가느냐고 묻는 할머니를 봤다. 그때 당시만 해도 학교를 가지 못해 글을 읽지 못하는 할머니들이 많았다”며 “마을에서도 많은 분들이 글을 읽지 못한다며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더니 필기구와 노트를 마련해 응원을 해주었다”고 웃음지었다.

또 그는 이웃들과 한글을 가르치는 학생들로부터 난생 처음 농사일도 배우기 시작해 시금치와 과일나무, 상추, 무 등도 심어 키우고 있다. 지난해는 들깨도 수확해 봤다고 자랑했다.

그는 “고향으로 와서 도시에 살면서는 몰랐던 부분도 많이 알게 되고 처음 농사도 지어 봤는데 직접 키우고 수확하는 것이 힘들지만 배워가는 재미가 있다”며 “지금 가르치는 한글반 학생들도 80세가 다 됐지만 배우려는 모습을 보면 나도 더 열심히 배워 마을 분들에게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이장은 도시에서는 노인대접을 받았지만 마을에서는 젊은 축에 속해 궂은 일을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이제 고향에 내려 온지 1년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는 지난해 말 마을주민들의 추천을 받아 하촌마을 이장직을 맡게 됐다. 이 때문에 그는 올해 마음가짐이 남다르다. 마을의 대소사 등 살림살이를 챙기고 행정과 주민의 가교역할을 해야 하는 이장으로 추대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는 “고향에서 생활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마을 주민들에게 농협이나 면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들은 제대로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며 “예를 들면 특용작물 같은 경우 재배하는데 있어 시에서 지원을 해주는 부분이 있는 데도 주민들이 몰라서 혜택을 못 받는 경우가 있다. 이런 부분은 주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찾아서 알리는데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시골에서는 주민들끼리 사소한 문제로 다투는 경우도 있는데 마을 주민간 화합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분위기를 만드는데 앞장서고 싶다”며 “또 어르신들이 마을회관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시는데 여가프로그램이 없어 올해는 탁구교실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볼 생각”이라고 전했다.

끝으로 그는 “우리 마을은 예전에 구리를 캐는 광산으로 인해 다른 마을에 비해 수질이 좋지 않고 토질도 좋지 않아 현재 쌀농사밖에 지을 수가 없다. 다행히 진주가 농업도시인 만큼 농사 짓는 기술이 많이 발전되어 있고 이를 가르쳐주는 기관도 많아 주민들과 함께 배워 볼 생각”이라며 “마을 토질에 맞는 작물을 찾아 주민들의 소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실행에 옮기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귀향 후 서툰 농사일을 익히느라 바쁜 와중에도 매일 마을회관으로 출근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마을 소득사업을 구상하는 등 도시생활 못지않게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글=정원경기자·사진=오태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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