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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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3. 소문에는 있다
“가, 감사하옵니다.”

“오죽이 참 보기 좋구먼. 우리 고향에는 잣나무가 근사하다네.”

조운은 곧장 심장이 터져 날 것만 같았다. 드디어 그 스님이 예언한 사람과의 인연이 맺어지려는 순간이었던 것이다. 조운이 더욱 흥분하고 기뻤던 것은, 목사의 조카 되는 높은 계층 사람과의 교유도 그렇거니와, 모든 것이 자신의 운명대로 좀 더 투명하고 확실하게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앞으로 두 사람을 만나게 해주겠네.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다려지옵니다.”

둘님과의 만남을 기다리는 것과는 또 다른 성질의 가슴 벅참이 그의 온몸을 사로잡았다. 그렇다면 광녀는? 솔직히 겁부터 났다. 그리고 싫었다, 당연히. 그런데 정말 미칠 노릇은, 둘님이 혼자서 그에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물론 둘님은 혼자였다. 심지어 누구 다른 사람들 눈에 띌까 봐 자기 그림자조차도 데려오고 싶어 하지 않을 정도라는 것을 조운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운은 언제 어느 곳에서나 둘님이 광녀와 함께 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혹은 나란히 오는 정도가 아니라 한 몸이 되어서였다. 둘님의 얼굴, 광녀의 젖가슴. 마구 뒤섞인 둘님과 광녀의 웃음소리와 울음소리. 조운의 눈앞에서 죽검과 죽궁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죽검과 죽궁이었다.

“내가 이 고을에 부임한 것이 예사로 여겨지지가 않아.”

목사 눈에 비친 조운은 퍽 예의 바르고 단아한 용모였다. 그 와중에도 목사 입에서는 갈수록 조운의 마음을 잡아당기는 소리가 나왔다.

“내 조카 시민이 말일세. 자네와 닮은 점이 많아. 누구에게도 굽히지 않고, 무엇보다 제 소신대로 일을 행해 나가려는 것도 그렇고…….”

“빨리 만나보고 싶습니다.”

조운의 진심이었다. 서로가 태어나기도 전에 이미 맺어진 사이라지 않은가. 목사가 감개무량한 얼굴로 말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다는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드는구먼. 여기엔 어떤 초월적인 힘이 작용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도 들고…….”

조운 역시 누가 시키기라도 한 듯 자신도 모르게 말했다.

“반드시 사람이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구를 만들도록 하겠사옵니다. 제 목숨을 걸고 이룰 것을 목사 영감 앞에서 감히 맹세하옵니다.”

“참으로 기대가 크이. 자네 같은 젊은이들이야말로 이 나라 초석이라네.”

김제갑 목사도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았다.

“절대로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사옵니다.”

조운의 기상은 팽팽한 활시위와도 같았다. 광녀에 대한 망상도 없어졌다.

“가마못 안 동네에 산다고 했던가?”

“예, 그렇사옵니다. 비봉산 서편 자락에 있는 동네이옵니다.”

“아, 비봉산에 얽혀 있는 봉황새 전설은 나도 들었네. 가마못 열기를 못 이겨 멀리로 날아가 버렸다고? 들을수록 안타깝고 가슴 아픈 사연이더구먼.”

제가 바로 그 봉황새의 분신으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한 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이 입 안에서 맴도는 조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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