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 (大馬)
대마 (大馬)
  • 양철우
  • 승인 2014.02.1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양철우 기자
바둑을 두다 보면 돌 하나가 전체 판세를 좌지우지할 때가 있다. 죽어가는 대마가 돌 하나에 살아날 수 있고, 승기를 잡은 대마가 돌 하나에 오히려 죽을 수 있다.

중국 진나라 말기, 항우와 유방이 천하를 놓고 싸울 때다. 싸움이라면 유방은 항우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5년에 걸친 싸움에서 군대를 형성하지 못할 정도로 유방은 패하고 패했다. 그러나 항우에게는 큰일을 그르칠 수 있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함양에 진입해 민가에 불을 지르고 살육을 함으로써 민심을 크게 잃은 약점도 있지만, 이보다 더 큰 약점은 범증 등의 뛰어난 인재들의 의견을 듣지 않고 ‘나 아니면 안 된다’식의 ‘독선’이다. 결국 이 독선이라는 돌 하나는 다 잡은 유방의 대마를 살려주고, 자신의 대마는 다 죽이는 패착이 되고 말았다.

지난 3일 엄용수 밀양시장이 3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나노국가산업단지라는 큰 기득권을 앞세워 3선 도전이 기증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불출마 선언은 충격 수준이다. 엄 시장은 3선 불출마 선언의 이유로 지난 2010년 7월 1일 재선 취임사에서 밝힌 민선 5기를 마지막으로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는 시민들과의 ‘약속’ 때문이다.

매년 집단 민원과 잡음들이 없는 해가 없었는데, 이는 변화에 따른 시민들의 인식부족도 원인이지만 (시장으로서) 과업에 대한 집착과 섬세하지 못한 역량이 더 큰 원인이다. 8년이란 시간이면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하기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3선을 하는 것은 단지 지금까지 진행됐던 사항들의 연장선상이 될 뿐 새로운 가치창출과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의 어두운 면은 불식하고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새로운 분위기로 새 출발이 필요하며. 한 번쯤 단절이 필요한 때라고 밝혔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비판과 비난의 대상이었던 인사정책, 식어가는 기대감, 3선 가능성에 대한 부담감 등이 엄 시장을 옥죄였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에 엄 시장 주위에선 3선 출마와 불출마를 두고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일어났을 것이다.

엄 시장이 밝힌 불출마 선언 말미 부분이 눈에 들어온다.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시기는 이제 아니다.” 엄 시장은 재임기간 동안 큰 정책만 내세우다 작은 정책들은 실패했지만, 정상에 올라설 때 물러섬으로써 대마는 죽지 않고 살았다. 항우는 독선 때문에 대마를 죽였지만, 엄 시장은 독선을 버림으로써 대마를 살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