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가 단위를 만나면
숫자가 단위를 만나면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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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명영 (반성중학교장)
숫자가 단위와 함께 사용되면 의미와 발음이 달라진다. 소설 삼국지에 관우를 소개하는 대목이 있다. 당당한 9척 장신에 수염의 길이가 2자는 되어 보이고, 얼굴은 무르익은 대춧빛이요, 입술은 연지를 칠한 듯하며, 봉의 눈에 누에눈썹의 모습이 늠름하고 위풍당당했다. “내 성은 관, 이름은 우요, 자는 운장이라 하는데, 하동 해량이 고향이오.”

尺은 자를 훈으로 음을 척으로 하는 상형문자이다. 사람의 발에 표를 한 모양으로 발바닥 길이의 크기를 1척이라 하고 한 치(촌)의 열배를 말한다. 자는 길이를 재는 도구를 말하며 크기는 척과 동일하다. 크기가 같다면 단위 이름이 달라도 숫자의 발음은 같아야 하지 않을까. 1척 크기를 알게 하는 사례가 있다. 형가는 독을 바른 천하의 비수를 지니고 역수 강변에 이르러 ‘바람 소리 쓸쓸하고, 역수는 차갑구나. 장사가 한번 가면, 다시 오지 못하리라’라는 노래를 남기고 건넌다. 마침내 형가는 연나라 사신으로서 함양궁에서 진왕 정(진시황)을 대면하고 두루마리 지도를 바친다. 지도가 다 펼쳐지자 그 비수가 나타났다.

형가는 왼손으로 진왕의 옷소매를 붙잡고, 오른손으로는 비수를 쥐고 왕의 가슴을 찔렀다. 그러나 미처 비수가 몸에 닿지 못했는데, 진왕이 놀라서 몸을 당겨 일어서자 소매가 잘라졌다. 당황한 정은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으려 하지만 길어서 뽑히지 않는다. 허둥지둥 칼집을 잡고 기둥 사이로 이리저리 쫓기는 진왕과 단검으로 따라 잡으려는 형가와의 생사의 드라마가 연출된다. 겨우 정은 칼을 등에 지고 뽑아 형가를 제압하였다. 왜 등으로 돌려서야 뽑을 수 있었을까. 아마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으려면 한손은 칼집을 쥐고 다른 손은 손목을 안으로 하여 칼자루를 잡고 빼야하는 데 한팔 길이만큼의 직선운동이라 칼집을 빠져 나오지 못하지만, 등에 지면 손목을 밖으로 세워 칼자루를 쥐면서 곡선으로 휘둘러 운동거리가 길어져 칼은 칼집에서 분리되는 것이다.

진왕의 칼 길이는 7척이고, 비수는 7촌이라 칼집 속 장검이 1/10의 단검에 쫓겼다는 것이다. 진왕의 칼을 자로 재보니 무려 162cm이라 위엄을 보이는 장식용임을 알 수 있다.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 관운장은 외모부터 특별하다. 2미터가 넘는 키로 적토마에 높이 앉아 46센티미터 수염을 쓰다듬는 모습에서 과연 미염공이라 할 것이다. 관우의 키 9척과 수염 2자의 숫자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아홉척 두자 또는 구척 이자라 할까? 일반적으로 ‘구척 두자’라고 한다.

배의 단위 척(隻)이 숫자와 만나면 어떻게 될까. 이순신은 조정에서 육전을 명하자 “이제 신에게 아직도 열두 척의 전선이 있으니 죽을 힘을 내어 싸우면 할 수 있다”고 장계를 올린다. 부피단위로 되 또는 리터(L)를 사용한다. 2되 2L은 어떻게 읽히는가. 숫자가 단위와 만나면 하나, 둘, 셋 또는 일, 이, 삼으로 발음된다. 왜 그렇게 될까.
안명영 (반성중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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