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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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3. 소문에는 있다
“내 조만간 자네를 한번 부르겠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내 조카와의 만남도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기로 하고…….”

목사 말을 들으면서도 조운은 눈앞의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무리 내 운명이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다손 치더라도 어떻게……?

“나는 이만 가봐야겠네. 공무에 매인 몸이 너무 시간을 많이 지체했어. 하지만 자넬 만나게 돼서 정말 반가우이.”

김제갑 목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운도 얼른 몸을 일으켜 세웠다. 코를 나란히 하고 있는 갖신과 짚신이 정다워 보였다. 일어선 자리에서 목사는 한 번 더 말했다.

“어쨌든 그 일이 꼭 성사되길 빌겠네. 그리고 그건 자네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니고 조선 전체의 일이라고 믿네. 만약 그게 가능해진다면…….”

목사는 아직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하긴 웬만한 감동이라면 생판 처음 만난 평민 신분의 사내에게, 양반 출신인 자기 조카와의 만남을 주선하겠다고 했겠는가. 아마 관아로 돌아가서도 그는 충격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이다.

김제갑 목사는 선견지명이 뛰어났는지도 모른다. 그는 조운에게서 어떤 싹을 발견했을 것이다. 조카 시민을 무척이나 아끼고 사랑하는 그였다. 시민이 반드시 큰 인물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런 시민에게는 그를 보필할 많은 인재들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조운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라고 보았던 것이다.

사실 김제갑 목사는 조운의 꿈이 실현되리라는 기대나 희망을 크게 품지는 못했다. 사람이 하늘을 날다니? 도대체 그게 가능한 일인가 말이다. 하지만 패기와 희망에 차 있는 한 젊은 사내의 뜻을 꺾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그 기발함 또한 다른 여러 곳에도 활용할 수 있으리라 보았다. 한양 땅에서도 그만한 인물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터였다. 그게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당치도 않을 정도로 그가 조운을 잘 대해준 원인이었다.

“대나무가 필요하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네. 어떤가?”

“공무에 바쁘신 목사 영감께 폐를 끼칠 수는 없사옵니다. 부족하나마 어떻든 제 힘으로 해보겠습니다. 그 말씀만으로도 대나무 수만 그루를 주신 은덕을 받았사옵니다.”

“역시 내가 사람을 잘못 보지는 않았어. 나중에 나도 한번 하늘을 날 수 있게 해 달라고 미리 부탁하겠네. 하하하.”

목사가 몸을 흔들자 작은 바람이 일었고, 그 속에는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싱그러운 대나무 향기가 풍겨 나오는 듯했다.

“아니, 우리 시민이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주면 더 좋겠네.”

“조선 백성이면 누구든 그렇게 될 수 있도록 할 생각이옵니다.”

“그래, 그래야지. 아무렴.”

목사는 수행원들을 향해 손짓을 했다. 그러자 그들은 단걸음에 뛰어왔다. 그림자들이 어지러운 듯 질서정연했다. 목사는 얼른 가마에 올라타며 빨리 갈 것을 명했다.

목사 일행은 점점 멀어져갔다. 조운은 그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한참을 그대로 혼자 서 있었다. 댓잎을 흔든 바람이 신명난 듯 하늘로 몸을 치솟고 있었다. 그 바람의 몸을 타고 날아가는 수레를 조운은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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