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5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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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3. 소문에는 있다
그러자 학노는 짐짓 서운하다는 듯,

“이놈아, 아비가 숨 좀 쉬자. 너는 이 아비보다 조운이가 더 좋다, 그 말이지?”

둘님은 그만 얼굴이 빨개져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렇게 정숙하고 부끄러움 잘 타는 처녀가 또 어디 있을까. 지금 그녀 몸속에 들어가 있는 사람은 그 광녀가 아니라 더할 나위 없이 참한 양갓집 규수였다. 어쨌거나 조운도 당황하여 눈 둘 곳을 찾고 있는데, 학노가 두 사람 얼굴을 번갈아보며 빙그레 웃고 나서,

“내가 안 그래도, 조운이가 어서 그 일을 성공해야…….”

학노는 하루라도 빨리 두 사람의 혼례를 치러주고 싶었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해줄 별식을 장만하기 위해 저잣거리로 나간 아내 정씨도 마찬가지였지만.

조운도 똑같았다. 어떤 장애물이 닥치더라도 둘님을 어서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광녀로부터의 고통스럽고 위험한 망상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을 성싶었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과 같은 저런 상태의 둘님과는 한 집에서 함께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게다가 가정을 가지다 보면 아무래도 자신이 하고자 하는 대업(大業)을 제대로 수행해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나서 위기에 빠진 나라를 건질 귀인을 구하는 일만큼 보람되고 기쁜 일이 또 있겠는가? 무엇보다 자신은 그런 과업을 성취해야 할 운명을 타고 태어났다지 않은가.

아무튼 하늘을 날 수 있는 기구를 어서 완성시켜야 모든 게 이뤄질 수 있었다. 그것이 운명을 거스르는 데서 올 수도 있는 재앙과 불운을 막는 길이었다. 저도 급한 일이 있는지 개미 한 마리가 노란 장판지 위를 빠르게 기어 문지방을 넘어가는 게 눈에 비쳐들었다.

“강원도 원주에 사는 서 모라는 사람한테서 들었는데 말이다.”

학노는 혀로 입술을 축이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그가 하는 이야기가, 자기 고장에 하늘을 나는 기구와 관련된 책을 소장하고 있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은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어서 내게 소개해 줄 수는 없고, 그 대신에 다른 사람을 말해 주겠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이라면……?”

조운이 바짝 다가앉을 것같이 하며 묻자 학노는,

“허, 자네나 우리 둘님이나 저울에 달면 눈금 하나 안 틀리겠구먼 그래. 우물에 가서 숭늉을 뭐 어쩐다고 하더니…….”

조운은 낯을 붉혔다. 학노는 말은 그렇게 하였지만 곧장 알려주었다.

“충청도 노성 지방에 사는 윤달규(尹達圭)라는 이가 그렇게 기물을 잘 만드는 재주가 있다고 하데.”

조운은 그 사람 이름을 듣기만 해도 벌써부터 온몸이 떨리고 정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조운과 눈금 하나 안 틀릴 둘님의 숨소리도 가쁘게 새어나왔다. 그건 뽀얀 젖가슴을 드러내 보이며 흘리던 광녀의 신음소리와는 전혀 달랐다. 학노도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말씨는 어쩔 수 없이 크게 흔들려 나왔다. 이건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 혼례와도 직결되는 일이었다.

“그 사람이 정밀하고 교묘한 기구를 만드는 재간이 뛰어나, 그것을 창안하여 기록해 두기까지 했다는 거야.”

“예? 그, 그럼 벌써 그것을 마, 만든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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