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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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3. 소문에는 있다
조운은 물론 둘님의 얼굴에서도 핏기가 싹 가셨다. 여간 충격적인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런 딸을 본 학노가 조운을 나무라듯 했다.

“허, 자네 오늘 정말 왜 이러나? 자네답지 않게.”

조운의 목이 어깻죽지 사이로 들어갔다. 그런 조운을 지켜보는 둘님의 표정이 복잡했다. 조운이 광녀와 어찌어찌 했다느니 하는 풍문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와 비슷한 빛을 보였었다. 그런데 이어지는 학노의 이야기는 갈수록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나아가 심한 전율을 느끼게까지 하였다.

“소문에 의하면, 아, 이건 어디까지나 소문이긴 한데, 여하간에 그는 소리개처럼 만든 기구를 타고 사람이 헤엄치듯 자벌레나방이 꼬리를 붙였다 몸을 폈다 하듯 하여, 하늘로 올라가 뜰 안에서 상하 사방을 마음대로 거침없이 날아다닌다는 거야.”

조운과 둘님이 동시에 놀라는 소리를 내었다. 그방 북쪽 벽 위에 자그맣게 만든, 들어 여는 외짝으로 된 들창도 파르르 떨리는 듯했다. 이번에는 학노도 더는 나무라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고 나서 또 말했다.

“그것도 아주 잠깐 사이에 몇 리를 나는 힘을 발휘한다니, 이거야말로 붕새가 단숨에 삼천리를 나는 것과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그런 것을 타고 다니면, 장사하기도 정말 편할걸?”

조운은 넋이 삼천리는 나간 사람처럼 보였다. 그런 조운이 너무 불안하고 걱정스러워 보여서일까. 학노 입에서는 이런 소리가 나왔다.

“한데, 말이야.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누구도 모른다는 거야. 내가 방금도 말했지만 단지 그런 소문이 나 있을 뿐…….”

“소문으로만…….”

그렇게 되뇌는 조운 머리에 동네 처녀들이 퍼뜨린 그 소문이 자리 잡았다. 미친 여자와 그가 놀아난다는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둘님이 맨 먼저 보인 반응은 영원히 지워버릴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그래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그깟 헛소문 따윈 저절로 가라앉겠지 하고 크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그러던 것이 둘님이 광녀에게서 머리채를 낚아채인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완전히 달라졌다. 둘님은 여자들만의 섬세한 감각으로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았다. 조운을 향한 광녀의 본능적인 성애의 감정까지를.

“나도 믿을 수가 없네.”

학노는 곰방대를 입에 물었다. 조운이 당장 자리에서 일어날 것같이 하며,

“제가 가서 그 사람을 직접 만나보겠습니다. 만나보면 알 수 있겠지요.”

“그 먼 곳까지 말인가?”

바람과 햇볕에 검게 그을린 학노 얼굴에 난감해하는 빛이 떠올랐다. 둘님도 썩 내키지 않은 듯 안타까운 눈길로 조운을 바라보았다. 그렇지만 조운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보다 더 먼 곳, 설사 나라 밖이라 해도 가야 합니다. 저는 무슨 어려움이 있어도 반드시 그 일을 해내어야 하니까요.”

“자네 뜻이 금석같이 굳다는 것은 진작부터 알고 있었네만…….”

조운에게 말을 하면서도 학노는 둘님의 얼굴을 살폈다. 그가 보기에도 조운을 대하는 딸의 태도가 좀 이상야릇하다고 느껴진 걸까. 객지를 떠돌던 그는 아직 광녀와 얽힌 그 소문을 듣지 못한 상태였다. 만약 그가 그 사실을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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