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7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장. 1. 어떤 해후
학노는 괜한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후회하는 빛이었다. 그러나 그 일을 이루지 못하면, 조운은 둘님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처녀와도 혼례를 올리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첫 번째 문제는, 그곳까지 혼자 가기는 좀…….”

보부상을 하느라 조선팔도를 돌아다니는 그는, 세상이 얼마나 위험한 곳인가를 넌지시 일깨워주려는 듯했다. 조운은 목이 메었다. 푸른 담배 연기 탓만은 아니었다. 기약없는 고된 작업이었다. 하지만 대나무와 소나무가 벗이 돼주어 외롭지는 않았다. 김제갑 목사가 말하던, 시민이라는 그 귀인의 고향에서 유명하다는 잣나무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그가 그 방법을 말해 줄는지 그것도…….”

둘님도 그게 마음에 걸린다는 기색이었다. 그런 둘님 모습이 조운을 또다시 혼란에 빠뜨렸다. 지금 보아서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여자 같았다. 하지만 둘만 있는 분지의 작업장에서 그녀가 해 보이는 태도는 너무나 달랐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그곳에 오지 않는 게 서로에게 더 나을 터였다. 한데도 그녀는 거의 매일같이 거기 나타났다. 마치 조운과 광녀가 만나는지 감시하려는 사람처럼.

“어쨌든 부닥쳐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운의 각오와 의지는 그집 마루에 놓인 다듬잇돌보다도 단단해 보였다. 저것도 그의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다고 학노는 내심 스스로를 타일렀다. 학노의 눈에 비친 둘님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조운이 그곳으로 떠나면 훌쩍 날아간 새처럼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하는 듯했다. 하지만 학노가 둘님에게 네 생각은 어떠냐고 물었을 때, 그에게 돌아오는 딸의 답변은 그를 망연자실케 하였다.

“그건 오라버니 운명이지, 제 운명과는 상관도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데 학노가 얘기한 첫 번째 문제는 의외로 잘 풀렸다. 조운은 사흘 후에 충청도 땅으로 가기로 일정을 세웠다. 그러고는 그 이튿날 남강변에 있는 대밭으로 갔는데, 바로 그곳에서 그 먼 여정에로의 동행(同行)을 만들 줄이야.

오죽은 피하기로 했다. 굳이 귀한 검은 대나무일 필요는 없었다. 그것보다도 어떻게 만드느냐가 최대 관건이었다. 실패를 수천 번도 더 거듭해온 터였다. 정말 사람 마음도 몰라주는 매정하고 불쌍한 놈이었다. 퍼질러 앉은 채로 땅바닥을 치며 대성통곡을 해도 본체만체하는 그놈과 어쩌다가 운명적인 인연을 맺도록 태어났는지.

‘나는 수레’의 주검은 서럽고도 참혹했다. 걸핏하면 대나무 뼈대가 망가지고 무명천 날개도 찢어지고 소나무 바퀴는 빠져 달아나고 아직까지도 재료를 확실히 정하지 못한 머리조차 붙어 있질 못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날아오르게 하는 일인데, 그것은 그 자신만의 지혜나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았다. 자존심 상할 소리지만 그건 대단히 정확한 판단이라고 받아들였다. 충청도 노성 지방에 산다는 그 윤달규라는 사람을 만나면 무슨 길이 보이겠지 했다.

그런데 조운이 막 베어낸 대나무를 앞에 놓고 앉아서 골격을 이리저리 맞추어보고 있을 때였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뒤쪽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 그를 소스라치게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