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서 비차(62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서 비차(62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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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1. 어떤 해후
“저, 혹시……?”

조운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다음 순간, 그는 반가움과 놀람이 뒤섞인 소리를 내었다.

“아, 상돌……?”

그러자 상대방도 사뭇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조……운……?”

조운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대나무를 팽개치고 일어섰다. 두 사람은 금세 한 몸이 되었다. 서로 부둥켜안은 채 떨어질 줄 몰랐다. 아버지가 술안주로 좋아하는 죽순이 천지에 나 있는 것을 발견해도 그렇게 반가울 수는 없는 조운이었다. 실로 몇 해 만에 다시 보는 얼굴인가? 그동안 두 사람은 모두 어엿한 장정으로 바뀌었다. 그렇지만 그들 마음속에는 서로의 소싯적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날 나누던 대나무평상 이야기도 되살아났다.

상돌은 지금까지 자신이 양반 자식들에게서 당했던 수모와 고통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아무런 죄도 없이 그들에게 끌려가 몰매도 숱하게 맞았다고 할 땐 두 눈 가득 눈물이 괴기도 하였다. 그래서 천민들이 사는 이외의 곳으로의 발걸음은 삼가고 있었노라 했다.

조운도 알고 있었다. 명색 양반집 자제라는 청년들이 백정 청년들을 볼라치면 무차별 폭행을 가한다는 사실을. 특히 백정 처녀를 만나면 입에 담지도 못할 추행을 일삼았다. 집단 성폭행을 당한 백정 처녀 하나는 섭천 우물에 몸을 던졌는데, 그 원혼이 그녀를 범한 양반 젊은이들을 몽땅 돌림병에 걸려 죽게 했다는 풍문마저 나돌았다. 병역 면제를 받는 양반집 자식들이 한창 넘치는 기운을 엉뚱한 다른 곳에 쏟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조운 같은 평민들 가운데서도 그런 짓을 저지르는 자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양반 출신들보다는 좀 덜한 편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마른 댓잎을 그러모아 방석 삼아 앉아서 얼마나 그간의 회포를 풀고 있었을까. 별안간 상돌이 대나무들이 푸른 거인들같이 빽빽하게 서 있는 저편 어느 곳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경악한 목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저, 저, 저게 뭐, 뭐야?”

“왜, 왜? 거, 거기 뭐가 이, 있는데?”

수런거리듯 하던 댓잎들이 일제히 숨을 죽이는 것 같았다. 상돌은 얼른 몸을 일으켜 세우려다가 도리어 엉덩방아를 찧으며 소리쳤다.

“아, 안 보여? 저, 저기 시커먼 저, 저거!”

“시, 시커먼……?”

그러면서 조운이 바라본 그곳에는 과연 시커먼 무언가가 있었다. 비록 대나무들 사이에 가려져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는 검은 물체였다. 아마도 아까부터 그 자리에 숨어 그들을 노려보고 있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그러자 조운은 더한층 사지가 떨리고 머리끝이 쭈뼛 곤두섰다. 그곳으로부터 살기 같은 게 뿜어져 나오는 것 같기도 했다.

“지, 짐승? 짐승은 아, 아닌 것 같은데……?”

그 와중에도 상돌은 용케 그 괴물체의 정체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운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듯 아무 판단도 서지를 못했다. 조선 최하층민으로서 온갖 고난과 위험에 부대끼며 살아온 백정 출신인 상돌이 그 순간에는 양민인 조운보다 훨씬 나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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