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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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1. 어떤 해후
“사, 사람이닷!”

곧이어 상돌 입에서 그런 소리가 터져 나옴과 동시에 조운도 그 물체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깨달음과 동시에 조운은 숨이 멎는 듯했다. 상돌이 벌떡 일어섰다. 일순,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정확히 말하자면 도망치기 시작했다. 검정말이나 검은 쥐 같았다. 상돌이 그를 쫓아가려고 했다. 조운이 일어서며 외쳤다.

“따라가지 마! 미, 미친 여자야!”

상돌이 멈칫하며 목 졸리는 듯한 소리로 물었다.

“뭐? 미친 여자라고?”

그러나 조운은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선 채로 멀어져 가는 광녀를 무연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광녀가 자기 주변을 계속 맴돌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현장에서까지 접근해올 줄은 몰랐다. 상돌이 아닌 둘님이었다면 질투심에 눈이 멀어 기회를 봐서 둘님을 해코지하려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미친 여자가 왜? 아, 그보다도 미쳤다는 걸 어떻게 알지?”

백정들 거주지인 강 건너 섭천에서만 살아온 상돌이 가마못 안쪽 마을에 사는 광녀를 모르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조운은 광녀에 대해 상돌에게 무어라고 설명을 해주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막막하다기보다 난감하고 황당했다. 나를 짝사랑하고 있는 여자? 아니면, 나와 혼례를 치르려고 하는 둘님의 연적(戀敵)? 그 어느 쪽이든 미친 소리였다. 상돌이 사는 섭천의 소가 웃을 얘기였다. 조운의 표정을 읽은 상돌은 더 이상 물어오지 않았다. 지난날 조운이 대나무로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지에 대해 캐묻지 않았던 것처럼.

조운이 먼저 댓잎자리에 도로 주저앉았다. 그러자 상돌도 따라 몸을 내려놓았다. 두 사람은 한동안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긴 모습들이 되었다. 그런 그들은 전혀 몰랐다. 광녀가 숨어 있다가 도망친 곳보다 조금 더 저쪽으로 떨어진 대밭 속에서, 그때까지의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가 소리없이 사라져가고 있는 또 다른 하나의 그림자를.

……둘님이었다. 조운 곁을 맴도는 광녀를 맴돌고 있는 둘님.

“아직도 그때 그 일을 하는 모양이네?”

얼마나 지났을까. 이윽고 상돌이 땅바닥에 놓여 있는 대나무를 내려다보면서 물어왔다. 조운은 그것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아직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조운은 이제는 말해주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았다. 그리고 그의 도움을 받고 싶었다. 잘은 모르지만 자기처럼 대밭에 자주 오는 상돌은 무언가를 알고 있을 성싶었다. 조운은 조립하고 있던 대나무 하나를 집어 들며 말했다.

“이것으로 하늘을 날려고 해.”

“뭐? 그게 무슨 소리야?”

상돌은 바보 같은 표정으로 조운을 빤히 바라보았다. 제도니 관습이니 사회구조니 하는 따위를 모르던 시절에 만난 그들은, 평민과 천민이라는 신분 차이를 떠나 서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말을 터놓고 있었다.

“내 말이 이해가 잘 되지 않을지도 몰라.”

“난, 내가 백정으로 태어났다는 것부터가 그래.”

상돌의 웃음이 한없이 서글펐다. 조운은 숨을 몰아쉬면서 칼을 무는 심정으로 말했다. 난 꿈이 있어. 그 말은 무수한 깃털을 지닌 새의 날갯짓처럼 대밭 속을 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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