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6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6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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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2. 산적 소굴에서
“그렇게 될 수만 있다면 나로선 더 바랄 게…….”

조운의 말에 상돌은 이미 결정이 다 난 것처럼 했다.

“아직 이틀이나 여유가 있으니까 준비 기간은 충분해.”

조운도 더 무어라 토를 달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그 일을 꼭 성사시켜야 한다는 일념에, 그보다 더한 위험도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는 그였다.

상돌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조운은, 학노에게서 들은 대로 거기까지 가는 길이며 도중에 묵어야 할 곳, 그리고 긴 여행에 필요한 행장 등을 꼼꼼히 챙기기 시작했다. 드디어 뛰어난 조력자를 만날 기회가 온 것이다. 벌써부터 가슴이 뛰고 손끝이 떨렸다.

술명은 아무 말이 없었지만, 박씨는 그런 자식을 보며 여러 가지 염려가 되는 말들을 하였다. 조운은 퍽 든든한 일행이 있으니 아무 염려하시지 말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켰다. 부모도 그 소리를 듣고는 다소 안도하는 빛이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둘님이 말했다.

“오라버니, 부디 몸조심하셔야 해요.”

둘님은 조운이 상돌이라는 백정 사내와 함께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어느 정도 마음을 놓는 눈치이긴 했지만 그래도 무척 신경이 쓰이는 듯했다. 오가는 도중에 산적의 습격을 받을 수도 있고 산짐승을 만날 수도 있는 것이다. 여독에 지쳐 병을 얻을 수도 있었다.

조운은 예전의 둘님으로 돌아온 듯한 둘님이 아주 기쁘고 반가웠는데 그게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배웅해주기 위해 조운이 둘님을 따라 사립문을 나오는 순간부터 싹 바뀌는 그녀였다. 내가 언제 당신 걱정을 해주었느냔 듯 정나미가 똑 떨어질 만큼 싸늘해진 얼굴로 간다는 인사도 하지 않고 휑하니 가버리는 둘님이었다. 집밖에 우두커니 혼자 서 있는 조운을 담장 너머로 감나무가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간은 더딘 듯 빠르게 지나갔다. 이틀 후, 조운은 상돌과 미리 약속한 대로 저잣거리 근처에 있는 객줏집 앞으로 나갔다. 상돌은 벌써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 이게 상돌이 맞아?”

조운은 눈을 의심했다. 얼른 보면 전혀 딴 사람 같았다. 상돌은 조운 자신과 거의 똑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농사꾼이지 백정은 아니었다. 헝클어진 머리도 손을 보았고, 얼굴도 깨끗이 씻어 한결 단정해 보였다.

봇짐을 등에 지고 그들은 곧 길을 떠났다. 한 번도 보지 못한 풍경에 두 사내는 가슴이 뛰놀았다. 더욱이 서로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나선 여행인지라 피로한 줄도 몰랐다. 특히 그 길이 어떤 길인가? 아주 중요한 사람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가는 도중 학노 같은 보부상들도 만났고, 논이나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도 보았으며, 으리으리한 가마를 타고 가는 벼슬아치 행차와도 맞닥뜨렸다. 다행히 그들은 별다른 눈길을 보내지 않았다. 그만큼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도록 최대한 평범하게 꾸몄다.

재게 발을 놀렸다. 가면서 알아보니 조운이 상돌보다 한 살 더 많았다. 고갯길로 오르는 풀숲 조금 못 미쳐 서 있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란 글이 새겨진 남녀 장승 옆에서 상돌이 말했다. 앞으로 형님으로 모시겠어요. 의형제 얘기였다. 조운은 조금 쑥스러웠지만 기쁜 얼굴로 말했다.

“내 바로 밑의 동생 천운이와 동갑이니 그렇게 함세, 아우.”

두 사람은 얼마 후에 자신들에게 닥칠 엄청난 위기를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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