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7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67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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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2. 산적 소굴에서
그들은 쾌청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웃었다. 어쩐지 꽉 막혔던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또한 그러고 나니 둘 사이가 한층 가까워지는 기분이었고, 왠지 좋은 성과를 얻을 것도 같았다. 특히 조운은 광녀의 눈빛에서 풀려난 홀가분함까지 맛보았다. 뭔가를 갈망하는 듯 애틋하게 그를 바라보는 그 눈빛은 이미 광녀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런 광녀에게서 때로는 둘님과 거의 맞먹을 듯한 진실을 읽고 몸서리를 쳤다.

충청도로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그런데 여우고개라는 곳의 비탈진 산언덕을 막 넘어 주막거리로 접어들고 있을 때였다. 상돌이 등에 진 봇짐을 추스르며 벌써부터 묻고 싶었다는 듯 이런 말을 했다.

“우리가 만나러 가는 그 윤달규라는 사람이, 자기가 알고 있는 비법을 우리에게 말해 줄까요?”

조운의 안색이 지금껏 맑던 하늘에 드리워지는 구름장처럼 어두워졌다.

“선뜻 이야기해 주진 않을 거야. 하지만 무슨 수를 쓰든 알아내야지.”

“정말 하늘을 날 수만 있다면!”

상돌은 새가 날갯짓을 하듯 두 팔을 양쪽 높이 치켜들고 크게 흔들었다. 상돌의 몸 위에 영원한 미완성으로 그칠 것 같은 ‘나는 수레’가 겹쳐 보이는 듯하여 조운의 가슴은 쇳덩이같이 무겁기만 했다. 조운은 금방 허물어질 것 같은 마음을 다지듯 말했다.

“그 스님 말씀이, 머잖아 조선에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 했으니, 나라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기필코 그 일을 이루어내지 않으면 안 돼.”

“참, 형님이 날아서 구한다는 그 귀인은 누구일까요?”

조운에게서 대강 이야기를 전해들은 상돌이었다. 그는 알고 싶은 게 하나 둘이 아닌 모양이었다. 하지만 조운은 광녀와 같은 일이 또 일어날까 봐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나도 모르겠어. 때가 되면 저절로 알게 되겠지.”

조운은 김제갑 목사와 자신 사이에 있었던 이야기는 일절 입밖에 꺼내지 않고 있었다. 목사가 신신당부한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조운은 목사의 조카라는 사람을 얼른 만나고 싶었다. 자신과 생년월일시까지 똑같다는 그의 이름은 시민이라고 했다. 하지만 시민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돌의 관심은 오로지 하늘을 나는 것에만 쏠려 있었다.

“그 소문이 정말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못 믿겠어요.”

조운은 갈수록 낯선 풍광이 펼쳐지는 주위를 둘러보며 답답하다는 듯 말했다.

“나도 그래. 머릿속에 도통 그림이 안 그려져.”

온통 거대한 바윗덩이로 형성된 산 정상에서 짐을 풀어놓고 잠시 쉴 때, 상돌은 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는 저 아래 골짜기에 눈을 주면서 물었다.

“공중에 떠 있는 기구에 앉아 세상을 내려다보면 어떤 기분일까요?”

조운은 거기 검은 빛이 감도는 진회색 고사목에 앉아 있다가 구름을 뚫을 듯 비상하고 있는 커다란 새를 보면서 대답했다. 저 새하고 똑같겠지 뭐.

주막에 들었다. 머리를 뭉게구름 마냥 부풀리고 빨간 댕기를 매단 주모가 반갑게 맞이했다. 국밥과 동동주를 주문했다. 오랫동안 걸어오느라 발바닥이 부르트고 얼굴은 햇볕에 그을린 그들은 하나같이 영락없는 농사꾼이었다. 그래선지 의형제의 정은 더욱 두텁게 다가왔고 객창감에서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하필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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