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진주성 비차(68회)
[김동민 연재소설]진주성 비차(6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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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2. 산적 소굴에서
그때 조운의 고향에서는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는 몰랐다. 자기가 길을 떠난 후 김제갑 목사가 사람을 시켜 가마못 안쪽 동네에 있는 그의 집을 두 번이나 찾게 했다는 것을.

“이거 정말 죄송해서 어쩝니까? 제 아들놈은 지금…….”

술명은 목사가 보낸 사람 앞에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비록 고의는 아니었지만 그 고을 최고 목민관인 원님에게 바른 도리가 아니었다. 하지만 보고를 받은 김제갑 목사는 조금도 언짢아하는 기색 없이 다만 이렇게 말했다.

“그가 그렇게 먼 길을 떠났다니 어쩔 도리가 없군. 하지만 인연이 있다면 내 조카와는 언젠가 만나게 될 터, 모쪼록 그가 원행에 나선 뜻이 이뤄지길 바라는 심정이라네.”

그러나 그때까지도 조운은 물론이고 김 목사도 내다보지 못했다. 두 번 다시는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하게 되리란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소중하고도 짧은 인연이었다. 하지만 그 단 한 번의 인연이 아니었다면 훗날 역사를 뒤바꿀 그 시간들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까마귀도 제 고향 까마귀가 반가운 법이라는데, 경상도 말씨며 낯익은 풍경도 사라진 지 오래되고, 생전 첫발을 디디는 전라도와 충청도 경계 지점쯤 갔을까. 그들이 대낮인데도 사위가 동굴 속같이 어둠침침한 좁고 깊은 계곡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였다. 갑자기 나무숲이 우거진 길 양쪽 높은 언덕에서 산이 무너질 것 같은 엄청난 고함소리를 지르며 뛰어내려 앞을 가로막은 것은, 보기만 해도 간담이 떨어져 나갈 것같이 험악하고 사납게 생겨먹은 산적 떼였다. 모두가 손에 크고 시퍼런 칼과 몽둥이, 심지어 도끼며 철퇴까지 들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이 노래지면서 이제 꼼짝없이 죽게 됐구나 싶었다. 노획물이 걸려든 산적들은 좋아서 웃고 떠들어댔다.

“오늘 횡재 만났다. 황소 같은 놈들이니 한참 부려먹어도 되겠다.”

“야! 괴나리봇짐 속에 돈도 제법 들어 있구나!”

두 사람은 도적들 소굴로 끌려갔다. 세 방향은 산으로 둘러싸이고 입구 쪽만 트여 있는 분지에 형성돼 있는 그 산채는 어지간한 마을을 방불케 했다. 젊은 여자들도 보이고, 늙은이들과 아이들도 있었다. 상돌 눈에는 그가 사는 섭천보다 더 크고 활기 차 보였다. 조운은 가마못 안쪽에 있는 고향 동네가 떠오르고 부모님 생각이 나서 눈물이 솟아났다. 둘님 모습이 그려지는가 싶더니 어이없게도 그 광녀도 나타나 보였다.

낯빛이 불을 담은 것같이 뻘겋고 특히 시커먼 눈썹이 사납게 치켜 올라간 산적 두목이, 온 산이 쩌렁쩌렁 울릴 것같이 크고 무서운 소리로 으름장을 놓았다.

“어디서 온 무엇 하는 놈들이냐? 사실대로 말하라!”

조운은 입이 들러붙은 듯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온몸만 오들오들 떨고 있는데, 상돌이 무릎 꿇린 자세로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두목을 똑바로 보면서 말했다.

“우리는 백정들입니다. 경상도 지방에 살고 있었는데, 양반놈들이 너무나 괴롭히는 바람에 살 수가 없어, 무작정 살 길을 찾아 이렇게 나선 것입니다.”

그러자 표정이 약간 야릇해진 산적 두목이 더욱 오싹한 소리로,

“그게 사실이렷다? 거짓이면 사지를 찢어 산짐승들 밥이 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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