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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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2. 산적 소굴에서
“좋습니다.”

상돌 말에 산적 두목이 껄껄 웃으며 으르렁거리듯,

“그 용기 또한 내 마음에 든다. 하지만 거짓말을 한 게 탄로 나면, 너희 두 놈을 쫙쫙 찢어서 불속에 던져넣어버릴 것이니 각오하라.”

그자는 볼수록 조운의 고향에 있는 객줏집 사내를 연상시켰다. 객줏집 칼도마 같다는 말 그대로, 이마와 턱이 나오고 중간이 들어간 얼굴 모양을 한 그 산적 두목은, 부하를 시켜 상돌에게 커다란 칼을 주게 했다. 그러고는 마침 민가에서 약탈해온 소 한 마리를 끌어내오게 하였다.

조운은 가슴이 조마조마했다. 아무리 상돌이 백정이라고는 해도 실수하면 그것으로 다 끝이었다. 그러나 상돌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빛이 없이 소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소는 한순간에 쓰러졌다. 놀라운 칼솜씨였다. 빙 둘러서 있던 산적들 속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산적 두목은 호랑이가죽을 씌운 큰 의자에서 일어나 직접 마당까지 내려와 상돌을 덥석 껴안았다가 다시 의자로 돌아가 앉아 말했다.

“여기서 우리와 같이 살 생각은 없느냐? 양반도 상놈도 없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다. 적어도 추위에 얼어죽거나, 보리 피죽도 못 먹어 굶어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조운은 상돌을 바라보았다. 나라가 허가해준 구역 안에서만 살 수 있고,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하는 상돌로서는, 굉장히 반갑고 좋은 제안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조운은 상돌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동생, 자네는 어서 그렇게 하겠다고 해. 저 자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이런 기회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야.”

그러나 상돌은 고개를 내저으며 역시 낮은 소리로 말했다.

“아닙니다, 형님. 만약 그렇게 되면 형님 혼자서 그 어려운 일을 하셔야 되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는 비록 천대 받는 신분이지만 그래도 나라를 위해서 노력해 보려고 이렇게 따라나선 것입니다. 제 뜻은 그러니 더 이상 권유하지 말아주십시오.”

조운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그 순간에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자기 같으면 앞뒤 헤아리지 않고 산적이 되겠다고 했을 것이었다. 정신이 온전치 못한 그 광녀라도 그렇게 나올 터였다. 하지만 상돌의 대답은 이러했다.

“말씀은 고맙지만 저희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어 꼭 돌아가야만 합니다. 저희를 풀어주십시오. 그러면 그 은혜는 죽을 때까지 잊지 않겠습니다.”

산적 두목은 크게 아쉽다는 듯,

“너희 같은 자들이 우리와 함께해주면 아주 큰 힘이 될 터인데, 그래도 어쩌겠느냐? 약속은 약속이다. 좋다.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라.”

산채 저편 높은 벼랑에 나 있는 커다란 동굴이 이만큼 떨어진 곳에서 올려다봐도 퍽 대단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난공불락의 천연의 요새 같아서 거기에서 대항하면 관군이 이들을 토벌하려고 해도 수월치 않을 듯했다. 산적 두목은 이런 말까지 해주었다.

“가다가 혹시 또 다른 도적들을 만나거든, 백정을 거꾸로 한 정백이라는 산적 두목이 다스리는 산채에 들렀다가 나왔다고 하여라. 그러면 누구든 감히 너희를 해치려들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융숭한 대접까지 받고 산적 소굴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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