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4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4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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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3. 비차, 나는 수레
사실 조운 자신도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어쩌다 양반집 자제들이나 돈 많은 지주의 자식들이 글을 읽거나 학문에 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귀동냥한 것도 있었다. 특히 아버지 술명과 친분이 있는 서당 훈장이 집에 들를 때면 이것저것 물어보곤 했었고, 그때마다 학동들이 그가 없는 데서 코주부라고 놀려먹는 대춧빛 얼굴의 그 문훈장은 대견하다며 조운에게 한 자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했었다.

“내 생각에는…….”

조운은 상돌에게 미안한 마음에 말이 목구멍으로 기어들어갔다. 하지만 상돌은 금세 자존심 따윈 잊은 사람처럼 그 뜻을 말해 달라고 재촉했다. 조운이 고향 땅 가마못처럼 깊은 생각에 잠긴 눈빛으로 말했다.

“나도 잘은 모르겠는데, 날 비 자에다 수레 거, 혹은 수레 차, 그렇게 쓰는 비차가 아닐까 싶어.”

상돌이 큰소리로 복창하듯 했다.

“나는 수레!”

조운 역시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비차! 나는 수레!”

상돌이 감격에 찬 얼굴로 말했다.

“그것의 이름을 안 것만도 어디예요?”

“그래, 그것도 굉장히 중요한 사실이지.”

조운은 금방 하늘을 날 사람 같아 보였다. 그것을 비차라고 부르는구나. 비차. 특히 조운이 가슴 벅찬 것은, 그가 이전부터 자신이 꿈꾸는 비행기구를 두고 비록 ‘비차’라는 한자말은 아니지만 ‘나는 수레’라고 하는 조선말을 생각했었다는 사실이었다.

“배를 두드리라고 그랬지?”

조운은 두 손으로 자기 배를 두드렸다. 아니 할 말로, 너무 심하게 두드려대다가 배가 터져 죽을지언정 그 짓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상돌도 제 배를 힘껏 두드리며,

“그러면 바람이 일어 띄워 올릴 수가 있다고 그랬어요!”

조운은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서 마음에 새기듯 되뇌었다.

“비차의 배를 두드리면 바람이 일어나서 띄워 올릴 수가 있을 것이다…….”

그 소리는 맞은편 드넓은 벌판에서 불어온 바람에 실려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눈에 보였다. 하늘을 훨훨 날고 있는 비차의 모습이. 거기 타고 있는 그 자신의 모습이.

‘아아, 어서 고향에 가서 한번 시험해 보고 싶구나. 이 일을 아시면 부모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둘님이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벅찬 생각에 잠기는 조운 옆에서 상돌이 환호성을 올리며,

“두 가지나 알았으니 이번 길이 헛된 길은 아니에요, 형님!”

무명천으로 만든 것 같은 낮달이 저 높은 허공에서 지상의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달은 두 사람이 가고 있는 그들의 고향 쪽 하늘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겨놓으면서 그들더러 빨리 가자고 재촉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뒤미처 왜 무엇이 안 좋으려고 그런 불길하고 방정맞은 환각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일까? 어쩌면 저 낮달은 그가 잘 만드는 방패연의 이마에 오려 붙인 달이 떨어져 나와 버린 게 아닌가 싶어지는 조운이었다. 아니면, 제대로 날지 못하고 땅바닥에 거꾸로 처박히기 일쑤인 비차에서 떨어져 나온 날개나 바퀴의 잔해와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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