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5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75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3.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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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3. 비차, 나는 수레
고향으로 돌아온 조운과 상돌은 앞으로 더 자주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몇 달 만에 무사히 돌아온 아들을 본 부모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둘님이 모두가 보는 앞에서 기뻐하는 모습은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조운은 둘님을 배웅하러 사립문 밖으로 따라나서지 않았다. 둘님은 조금도 달라진 것 같지가 않았다. 광녀도 그럴 것이다.

그날 이후로 조운은 더한층 그 비행기구, 비차에 달라붙었다. 어쩌면 오늘이라도 당장 날 수 있을 듯했다. 그렇지만 그 자신 역시 둘님이나 광녀와 마찬가지였다. 달라진 건 없었다. 열심히 비차의 배를 두드려보았지만 어찌된 판인지 떠오르기는커녕 꼼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하긴 그냥 맹목적으로 배를 두드린다고 날아오를 수 있겠는가? 윤달규 말을 되살려보았다.

‘돌아가거든 비차의 배를 두드리시오. 그리하면 바람이 일어나서 띄워 올릴 수가 있을 것이오.’

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곰곰 되씹어볼수록 더욱 수렁에 빠져드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머리를 싸매고 애써 봐도 도무지 무슨 소린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혼란스럽기만 하고 다른 작업까지 방해하였다. 조운은 자면서도 생각했다.

‘대체 배를 두드리라고 하는 말이 무슨 의밀까? 그 말뜻을 알아내야만 해. 여기에 비차를 날게 하는 비법이 숨겨져 있어.’

그런 가운데 조운은 김제갑 목사를 만나 비차라는 이름하며 띄워 올릴 비법에 관해서 들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쪽에서 먼저 사람을 보내오면 또 모르지만, 자신 같은 신분으로 먼저 한 고을의 최고 자리에 있는 그를 만나기가 쉽지 않을 것이었다. 또한 무엇보다도 아직은 비차가 완성된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 그의 발을 묶었다.

조운은 김 목사를 만나는 일을 뒤로 미루었다. 상돌과는 자주 만났다. 다음에는 어디서 만나자고 약속을 해놓았고, 그날이 되면 어김없이 그들은 그 자리에 모습을 나타냈다.

가마못 안쪽 분지에는 숱한 미완성 비차들이 늘어섰다. 그것을 만들고 남은 재료들만 해도 산맥을 이루었다. 이제 솜으로 만든 비차의 머리 부분은 어떻게 보면 실제 새의 그것보다도 더 정교하고 멋졌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완벽하였다.

그러나 비차의 완성은 요원하고 묘연하기만 했다. 땅에 딱 들러붙어 통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날게 하려고 배를 두드리다가 그만 망가뜨려버리는 경우도 허다했다. 머리와 날개와 몸체가 따로 떨어져 나간 것을 보면, 그의 육신이 산산조각 난 것을 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돌발 상황이나 착륙할 때 강한 충격을 흡수할 수 있게 주 골격의 전방과 후방에 설치한 지지대도 곧잘 내려앉아버리곤 했다. 소나무와 참나무 바퀴는 몇 번 굴려보지도 않았는데 쑥 빠져나갔다. 위쪽에 붙인 화선지도 폭풍우에 찢긴 돛처럼 너덜너덜해졌고, 저절로 풀려버린 마끈은 실뱀보다도 징그러웠다. 그리하여 마음은 어김없이 실패한 후에 맥없이 땅바닥에 주저앉아 바라보는 노을처럼 빨갛게 타 들어가기만 할 뿐이었다. 조운은 급기야 이런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래. 그 사람, 윤달규는 아니야. 그냥 헛소문이었어. 어쩐지 우리를 자꾸 내쫓으려고만 하더니 켕기는 게 있었던 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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