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에 대한 일본의 시각
독도에 대한 일본의 시각
  • 경남일보
  • 승인 2014.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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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위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독도를 국제적으로 일본의 영토로 확인받기 위한 일본 측의 로비는 참으로 끈질기다. 1951년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체결 당시에 벌린 그들의 로비는 우리의 상상 이상이었던 것같다. 당시는 한국이 6·25전쟁을 치루기에도 힘든 시절이었다. 우리의 독도 영유권을 효율적으로 주장할 겨를이 없었다. 게다가 조약당사자로 참여할 수도 없었다. 이런 사정을 이용해 일본은 패전국이면서도 치열한 로비를 했다. 급기야는 1951년 8월 10일 러스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독도는 조선의 일부로 취급된 적이 한 번도 없다”는 내용의 편지를 한국에 보내는 해프닝도 연출되었다.

물론 이 편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는 보여지지 않지만 결과적으로는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국에 대한 모든 권리, 권한과 청구권을 포기한다”라는 내용으로 조약은 맺어졌다. 한국 측에서는 물론 독도는 당연히 울릉도의 속도(屬島)이기 때문에 빠졌으려니 했으나 일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본은 연합국훈령 677호(일본영토에서 제외되는 지역으로 “울릉도 제주도 독도”를 들고 있다)와는 다른 내용의 것으로 발표되었기 때문에 자기네들의 승리로 간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1953년 2월 27일을 기해 그동안 미 공군의 연습폭격목표로 사용하였던 독도를 한국의 항의를 받아드려 연습목표에서 제외시키기도 했다(김병렬). 이는 결국 실질적으로는 미국도 독도를 한국령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끈질기에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근거는 무엇일까?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마고사키 우케루(孫崎 享).

(1)한반도와 오키시마(隱岐島)사이에 울릉도와 독도를 일본영토로 표시한 고지도가 많다. (2)1618년 돗도리번의 상인들이 번주를 통해 막부에서 울릉도(다케시마)에 도항 면허를 받았다. (3)오타니와 무라카와는 쇼군으로부터 받은 해바라기 문양을 앞세워 울릉도에서 어로에 종사했고 채취한 전복을 쇼군가문에 바치면서 단독으로 섬을 경영했다. (4)애도시대 초기인 17세기중반에 이미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립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한 두 마디로 우리는 배척할 수 있다.

첫째 고지도로 말하기로 하면 일본영해로 표시한 고지도보다 한국영토로 표시한 지도가 훨씬 더 많다. 일본이 자랑하는 하야시 시혜이(林子平)의 ‘삼국접양지도(三國接壤地圖)·1735년’의 경우에도 울릉도(다케시마)와 마쓰시마(독도)를 조선영토로 색칠하고 있다. 여기에는 대마도도 한국영토로 색칠해 있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김상훈). 또한 1875년 일본육군성이 만든 ‘조선 전도’와 일본 해군성이 1886년에 편찬한 ‘조선동해안지도’에도 독도는 한국령으로 되어있다.

둘째로 1618년 일본이 조선정부 몰래 울릉도에 대한 도해(渡海)면허를 일본인들(오오따니(大谷甚吉)와 무라가와(村川市兵衛)에게 발부한 것은 맞다. 그리고 이러한 도해면허는 1661년에도 이어졌다. 그러나 1696년 1월 28일, 일본 도쿠가와 막부 관백은 일본인의 도해금지를 명령했다. 안용복의 활동으로 울릉도가 일본의 영토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막부는 덧붙였다. “죽도를 조선으로부터 빼앗은 것은 아니니 돌려준다고는 말은 할 수 없다.”

세 번째로 일본은 1905년 2월 22일에 시마네(島根)현 고시로 독도를 일본에 강제 편입했다. 그러나 이때에도 당시의 내무대신 후사가와 겐세이(芳川顯正)가 독도는 한국의 고유영토라고 주장하면서 강력히 반대하였다는 사실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이즈미 마사히꼬:泉 昌彦). 그뒤 1924년에 발간한 일본 중등학교 교과서에는 분명히 “독도가 조선땅”이라 명기되어 있었다(김문길).

이처럼 어느 역사 어느 자료를 보아도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못박은 흔적은 없다. 오직 일본 외무성과 정부만 딴소리를 한다. 일본 극우세력들의 망동에 일본의 양심세력은 가슴을 친다. 전쟁을 예비하고 있는 작태가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한·일간의 앞날에 먹구름이 인다.

김중위 (전 고려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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