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크고 깊어진 아이
1년 동안 크고 깊어진 아이
  • 경남일보
  • 승인 2014.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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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되돌아보면 작년 이맘때 처음 학부모가 된 나는 아이보다 아이의 첫 학교생활에 적응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아이는 믿는 만큼 자란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알게 모르게 괜한 걱정을 하며 아이가 친구나 선생님들에게 혹여나 상처를 받지 않을까 싶어 조바심으로 살았던 것 같다.

그새 1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많은 변화를 주었다. 아이의 2학년 첫주의 생활은 1학년의 생활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내게 보여주었다.

지난해에는 한 달 내내 학교 마치면 데리러 다니며 학교생활과 시간관리, 주변환경 등에 대해 알려주면서 아이의 안전에만 온통 신경을 쓴 것 같은데, 요새는 수업이 조금 일찍 마치면 제법 먼 거리임에도 혼자 씩씩하게 걸어오는 모습을 보면 여간 기특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가 집에 없다고 울지도 않고 다른 사람에게 핸드폰을 빌려 이모에게 전화를 걸 줄도 아는 모습에서는 문제 해결력이 생길 정도로 너무 커버린 것 같아 괜한 서운함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젠 어린아이 티도 없고 제법 학생답고 소년이 되어버린 그 모습이 너무나 의젓해보여 바라볼수록 흐뭇하기만 하다.

어제는 처음으로 반장선거에 친구를 추천하고, 또 자기도 추천받아 반 친구들 앞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유세도 했단다. 비록 선거에서는 떨어졌지만 자기가 추천한 친구가 반장이 되었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저 흐뭇하기만 했다.

이젠 학교에서 집에 오면 무얼 먼저해야 하는지 일의 순서도 제법 알게 되었고, 친구들과도 어떻게 지내야 하고, 선생님께도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아는 듯하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어른들을 만나면 먼저 인사를 할 줄 아는 모습에서는 어른을 공경할 줄 아는 아이로 커 가는 것 같아 그 모습을 보면서 마음 한켠으로는 뿌듯하기도 했다.

아이들이 항상 이렇게 예쁘고 반듯하게만 자라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슴속에 새기며 살아가고 싶은 엄마다.

요즘은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키도 점점 커지고 힘도 내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세지고 있고, 생각주머니 또한 점점 커지면서 가끔씩 내게 논리적으로 말대꾸 하는 날이 많아지고 있다.

가끔씩 2% 부족한 엄마의 허점을 잡아 나를 구석으로 몰기도 하고, 엄마를 들었다 놓기도 하고, 잠깐 방심하는 순간 아이의 작전에 말려들어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해주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는 양육태도는 이미 물 건너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이젠 말귀를 알아들으니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다짐을 하지만 닌텐도나 내 핸드폰을 사용하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아이의 행동이 통제되지 않게 될수록 나의 협박은 마귀할멈 수준으로 변모해 그때그때 나를 절망하게 만든다.

어제는 게임이 하고 싶은지 내게 ‘공부하기 정말 힘들다’고 푸념을 하는 아들에게 ‘공부가 힘들면 안해도 된다’고, ‘학교도 갈 필요없다’고 정색을 하며 말했더니 ‘엄마도 힘들다면서 매일 학교가면서 왜 자기는 학교에 가지 말라고 하냐’고 반문을 한다. 순간 무슨 말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 ‘그럼 엄마가 어떻게 말해줬어야 했겠냐’고 되물었더니, ‘힘들지만 참고 공부하면 좋겠다’라고 말해주란다.

아이를 상전으로 모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부터는 아이와 협상하는 새로운 방법을 함께 의논해 봐야 할 것 같다.

1년이란 시간은 짧지만 아이가 커가는 깊이는 알 수 없을 만큼 깊어졌다.

이한우 (한국국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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