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김흥길 교수의 경제이야기
  • 경남일보
  • 승인 2014.03.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플레보이 왕국의 황제 휴 헤프너

휴 헤프너

‘성 혁명가’, ‘성충동이 강한 공상가’, ‘세계 최고의 난봉꾼’, ‘포르노 왕국의 황제’, ‘문화의 전복자’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휴 마스턴 헤프너(Hugh Marston Hefner)는 미국에 있는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 주식회사(Playboy Enterprises, Inc.)의 창업자이다. 그는 1926년 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시에서 태어났다. 자신이 태어난 집안의 분위기에 대해 휴 헤프너 본인은 보수적이고 중산층인 감리교도 집안이었다고 말한다. 어릴 때 아이큐가 152로 수재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학교 공부에는 큰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미국 육군에서 발행하는 미군 신문에서 기자로 일한 적이 있다. 그 후 일리노이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창의적 글쓰기 복수 전공을 했으며, 2년 반 만에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주간잡지 ‘에스콰이어’에서 2년간 작가로 일했으며 노스웨스턴 대학에서 대학원 과정에서 사회학을 전공하다 중퇴하기도 했다.

1953년 남성용 성인잡지인 ‘플레이보이’를 발행하기 위해 1953년 600달러 은행대출과 8000달러 자기자본으로 HMH 출판사를 설립하였고 같은 해에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그의 목표는 도시 남성들을 위해 미국 청교도 전통의 억압적인 반 성행위, 반유희, 반쾌락적인 사회적 규범에 대항하는 잡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1953년 12월에 발간된 플레이보이 창간호는 무려 750만부나 팔려 나가 그 당시에는 믿을 수 없는 기록을 세웠다. 창간호의 첫 누드 걸로 매릴린 먼로를 등장시킨 이래 소피아 로렌, 브르짓드 바르도 등 글래머 또는 육체파 여배우들을 차례로 발가벗긴 사진을 실어 소개했다. 그러나 플레이보이지는 저급하거나 단순한 에로티시즘에 머무르지 않고 그 위에다 적정량의 지성과 철학적인 요소들을 가미시킴으로서 차원 높은 성인 잡지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플레이보이에 매번 실리는 단편소설과 인터뷰는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헤프너는 자기 자신을 단순한 사업가라기보다는 성 혁명가, 사회운동가라고 이야기한다.

텔레비전 방송에 다수의 동거녀와 함께 출연하거나, 이제까지 동침한 여성들이 자그마치 2000명이 넘는다는 발언을 서슴지 않는 등 엽기적이고 충격적인 행태를 공개적으로 보여 왔다. 2014년 현재 그는 88세이지만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지난해 플레이보이 발행 60주년 기념행사를 기리며 헤프너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60년 전에, 나는 전 세계 세련된 남성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적인 변화를 반영하고 영향을 주기 위해 플레이보이를 창간했습니다. 처음부터 플레이보이는 ‘말하는 자유’, ‘선택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상징했습니다. 이러한 핵심 가치들이 수 십 년이 지난 뒤에도 플레이보이에서 계속해서 이루어졌다는 것에 대해 이 기념행사를 기리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196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플레이보이 제국은 미국 및 전 세계에 엔터테인트먼트 클럽을 확장시키며 번창하였다. 토끼 머리 로고는 세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상표 가운데 하나이다. ‘플레이보이’ 성인잡지 외에도 DVD 제작과 판매의 국제적 멀티미디어 운영, 플레이보이 온라인, 플레이보이 닷컴, 플레이보이 사이버 클럽, 사이버 스파이스, 평론가 선택 비디오, 수집가 선택 음악 등의 운영을 통해 매출액을 올리고 있으며, 플레이보이의 토끼 머리 로고를 사용한 패션사업에도 진출하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포르노의 범람과 무료 인터넷 성인 콘텐츠의 증가로 말미암아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의 사업이 예전 같지 않고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전성기에는 못 미친다지만 플레이보이지는 월 평균 320만 부를 찍어낸다.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의 2008년 매출액은 약2억9000만 달러였으며, 2008년 총 직원 수는 626명이었다. 2009년 휴 헤프너는 최고 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는 다음과 같이 술회한 바 있다. “나는 혁명을 일으키려고 한 적이 없다. 그저 섹스에 관한 주류 남성 잡지를 만들어보려 했던 것 뿐이다. 하지만 결국 그 생각이 혁명적인 아이디어로 판가름 난 셈이다.”

/경상대학교 경영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