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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구열전 <3>김형필 전 동명고 감독배구코트 '동명천하' 이룬 명조련사
최창민  |  cchangmin@g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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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4.03.27  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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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필(65)전 동명고 배구감독을 말 하면서 이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1977년 진주 동명고교 감독시절 청주에서 열린 전국고교춘계배구연맹전 동명고와 청석고의 8강전. 동명고가 1세트를 11-15로 내준 뒤 절박한 상황에서 2세트 경기 중 사고가 발생했다. 1세트부터 주심판정에 불만을 갖고 있던 김형필 감독이 순간적으로 흥분해 주심을 폭행하게 된다. 이 사건으로 김형필 전 동명고감독(이하 김형필 감독)은 퇴장을 당해 영구제명이라는 극약처방을 받게 된다.

경기 중 선장을 잃어버린 팀은 표류하기 마련, 하지만 동명고 선수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전열을 가다듬어 청석고에 세트스코어 2-1로 역전승했다. 이어 결승진출은 실패했으나 공동 3위에 입상하는 이변을 일으키게 된다. 여기에는 김형필 감독의 동생인 김형태(현 과기대 배구팀 감독)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었다. 김형태는 관례상 우승팀에게만 주어지는 대회 MVP를 3위팀에서 수상하는 전례 없는 영광을 누리게 된다. 월등한 실력을 갖춘 김형태를 주최측에서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후 김형태는 청소년배구국가대표에 발탁되는 영광까지 얻게된다. 이 대회에서 형 김형필감독은 영구제명 처분을 받고, 동생 김형택은 MVP와 국가대표에 선발돼 희비가 교차한다.

김형필 감독은 경기 중 일어난 주심 폭행사건에 대해 “대학 진학을 위해서는 3위에 입상해야 하는 매우 절박한 상황이었는데 주심이 처음부터 편파적인 판정을 내리는 것 같아 순간적으로 흥분했습니다. 선수들의 진로 때문에 일어난 우발적인 일이었다”고 회고했다. 이어 “개인적으로는 징계를 받아 타격이 컸지만, 이 일로 인해 경상대학교에 배구부가 창단되고, 고교 배구선수들이 대학을 진학하는 길이 열렸다”며 위안했다. 실제 1978년 3월 진주 경상대학교에 배구부가 창립해 배종수 이용수 임상식 고해철 등 동명고 출신 선수들이 진학했고 매년 계속됐다.

김형필 감독의 영구제명 징계는 4년 뒤인 1981년 12월 풀리게 되고 1982년부터 동명고 배구감독으로 다시 코트에 복귀한다.

김형필 감독은 흐트러진 팀을 재정비해 1984년 대구에서 열린 제65회 전국체전에 출전한다. 구관이 명관. 결승까지 진출한 동명고는 인창고를 3-0으로 셧아웃 시키고 우승을 차지한다. “선수들의 평균신장이 173cm로 작았는데 예선부터 단 한 세트도 내주지 않고 월등한 기량으로 우승 했어요” 당시 활약한 선수들이 황현주(현대 감독)김영동 최태길 김인석 강용래 김양수 등이다. 당시 진주시내에서는 카퍼레이드까지 열려 선수들의 금의환향을 시민들이 축하했다고 한다.

‘우승 비결이 뭐였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혹독한 훈련이었습니다. 좋게 말하면 하드 트레이닝이죠. 산청 원지 경호강 백사장에서 가혹한 체력 훈련을 시켰습니다. 진양호 365계단에서는 3∼4계단을 한 번에 뛰어 오르는 훈련을 수없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탄력이 좋아졌고 체력에서도 절대 우위에 있어 상대는 적수가 되지 못했습니다.”

김형필 감독은 “전국체전 우승 후 배구감독으로서 전략·전술에 눈을 뜨고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때부터는 동명고는 전국대회에 출전해 매년 2∼3차례 우승을 밥 먹듯이 하며 1987년까지 ‘동명 천하’의 명성을 이어갔다.

88올림픽을 앞두고서는 하종화, 윤종일이라는 불세출의 배구영웅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우승을 엮어 나갔다. 최고 전성기였다. 이 선수들은 1986년과 1987년에 잇따라 국가대표에 선발됐다.

김형필 감독은 “고등학교 선수들의 평균 신장이 193cm로 커졌고 우월한 기량을 발휘하면서 국가대표로 선발됐다”며 “선수와 팀 감독 모두가 전성기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이후 김형필 감독은 2009년까지 우승 제조기, 명 조련사라는 이름을 떨치며 동명고 배구부를 정상궤도에 올려놓고 자신이 길러냈던 하종화에게 바통을 넘기고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게 된다.

▲김형필감독이 배구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68년 경북고교 2학년 시절. 공부는 하기 싫었지만 대학진학은 하고 싶었다. 그래서 택한 것이 배구였다. 모든 스포츠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배구부에 입단하자마자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입단 6개월 만에 주전 자리를 꿰차 버린다. “졸업할 때는 각 대학에서 스카웃 제의가 빗발쳤다”고 회고했다.

김형필 감독은 “한양대학교를 선택했지요. 스포츠학부에 이회택 감독과 같이 입학했는데 배구에선 김형필, 축구에선 이회택이 같은 학교에 거의 동급의 대우로 입학했을 정도였으니까요.”

“대학 재학 시 중앙무대에서는 6인제 국제식 배구선수로 활약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대부분 극동식이었는데 아마 진주에서는 처음으로 국제식 배구를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1972년 대학시절 전주실내체육관 개관기념 배구대회에서 MVP를 수상하고 국가대표에 발탁됐지만 빛을 발휘하지 못한다.

“지나친 운동 때문에 무릎 연골에 물이 차는 현상이 생겨 선수로서 크게 활약하지 못했습니다. 부상은 치명적이니까요”

결국 1974년 한양대학교를 졸업한 김형필 감독은 곧바로 진주 동명고 배구부 창단을 계기로 진주로 오게 된다.

인연은 동명고가 스포츠학교로 탈바꿈을 시도하던 때 재단 이사장의 적극적인 후원이 있었기 때문. 이듬해인 1975년 3월 동명고 배구부 창단원년 헤드코치직에 취임하게 된다.

의욕적으로 나선 김형필 감독은 창단 후 2개월 만에 도민체전에서 우승을 거머쥔다. 그러면서 도내 진해 하동 울산지역 군소학교 배구부를 평정하게 된다.

1976년 홀로서기에 성공한 동명고배구부는 명실상부한 도내 최고의 배구학교로 거듭나고, 드디어 1977년 중앙무대에 진출한다. 그러나 여기서 주심 폭행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자신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계기로 춘계 연맹전, 3위에 입상하고 배구부가 일취월장 발전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김형필감독은 경남배구 발전을 위해서는 초등학교 선수들을 길러야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동명고를 맡을 때부터 초등학교에 배구부를 창단했던 것이 진주배구 발전에 밑거름이 됐습니다. 요즘 진주에서 선명여고와 경해여중 동명 중·고교 경남과기대가 전국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좋은 현상입니다. 앞으로 더욱 발전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배구부를 창단해 기초를 닦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배구 지도자로서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선수를 지도할 때는 너무 혹독하게 시켜서도 안 되고 정을 많이 줘서도 안 됩니다. 나는 가혹하게 훈련을 시켰는데 나이가 많이 들면 당사자들이 모두 이해를 하게 되지만 그 전에는 외면하는 경우가 있다”며 경험담을 전했다.

▲2009년 지도자 생활을 마친 그는 새로운 인생을 살고 있다. 2013년 프로골프 KPGA 그랜드부문(60세 이상)전국대회 우승을 차지하며 또 한번 스포츠 DNA가 살아 있음을 보여준다. 첫날 71, 이튿날 69, 합계 4언더로 우승을 차지했다.

“스포츠는 타고 났는가 봅니다. 자랑 같아 쑥스럽지만 테니스 농구 바둑 등 스포츠는 소질이 있는가 봅니다”라며 멋적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봄이 됐으니 다시 운동을 시작하고 싶다”며 운동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최창민기자





gn20140423동명고김형필감독 (1)
사진은 1985년 춘계전국 남녀배구연맹전에서 활약해 우승 주역인 된 하종화 윤종일의 모습.
gn20140423동명고김형필감독 (12)
1984년 동명고 배구부가 전국체전에서 우승한 뒤 진주시가지에서 카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는 모습.
gn20140423동명고김형필감독 (13)
동명고는 1984년 전국무대 우승 후 매년 2,3차례 전국고교배구를 평정한다. 사진은 춘계전국 남녀배구연맹전에서 우승한뒤 기념촬영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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