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1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1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3.3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장. 1. 길을 빌려 달라
전함 700여 척에 18,700명의 병력을 태우고 전진 기지였던 대마도 이즈하라 항을 출발한 제1군의 지휘자 소서행장.

그는 조선 정벌 선봉대장이란 사실에 나름대로 굉장한 자부심을 품었다. 어렸을 때부터 풍신수길을 따라 살벌한 전장을 누비며 많은 전공을 세웠던 그는, 여느 무골(武骨) 출신 장군들과는 달리 왜장들 중에서는 나름대로 지성과 교양을 갖춘 무장이었다.

여하튼 왜군 중 가장 먼저 조선으로 출병한 그들은, 약 아홉 시간의 항해 끝에 부산진 앞바다에 도착하였는데, 그때가 1592년 4월 13일 진시(辰時, 오전 7시∼9시)였다. 바야흐로 조일전쟁의 첫 번째 전투가 개시되려는 찰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자연은 자기들과는 상관도 없는 일이란 듯, 짭짜름한 바닷바람 끝에는 훈풍이 감돌기만 했다. 하긴 그만큼 거기 나루터는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부산포진은 조선국 경상도 제1의 해상 관문이라더니, 과연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구먼. 이만큼 멀리서 봐도 대단한 곳 같군 그래.”

넓고 평평한 갑판에 서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뭍을 바라보며 하는 소서행장 말에, 함께 종군한 종의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주변에는 조선인들이 설치한 왜관(倭館)도 있습니다. 우리 일본인 출입이 어느 정도 가능해 꽤 많이 머물기도 했지요. 저도 저곳 지리에 조금은 익숙합니다만…….”

“아, 그것에 관해서는 나도 들은 바가 있네.”

일본인이 조선에서 통상을 하는 무역처이자 접대처, 숙박처로서의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는 왜관. 그것은 고려 말부터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태조와 태종 등 조선 국왕이 일종의 회유책으로 만들어준 것인데, 왜인들이 아무 곳에나 제멋대로 배를 대는지라, 그들을 통제하기 위해 태종이 동래의 부산포와 웅천의 내이포를 개항하여 그곳에서만 정박하도록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뒤 왜관은 설치와 폐지를 거듭하게 된다.

“자넨, 조선말에도 능숙하다고 들었네.”

소서행장의 투구 앞면에 꽂힌, 초승달 모양의 쇳조각이 빛을 발했다. 일본말로는 소위 ‘마에다테’라고 하는 장식물이었다.

“게다가 부산진 첨사 정발과는 평소 안면이 있는 사이라니, 내가 자네에게 거는 기대가 자못 크다네.”

그 말에 자세를 똑바로 잡는 종의지의 마에다테는 괭이 모양이었다. 그는 개인적으로는 소서행장의 사위였고, 가톨릭에서는 양부의 관계였다.

그때 제1군으로 나선 다른 왜장들인 유마청신, 오도순현, 대촌희전 등이 갑판 위로 나왔다. 소서행장과 종의지는 퍼뜩 입을 다물었다.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서로 먼저 공을 세워 풍신수길의 신임을 얻으려고 혈안이 돼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소서행장과 종의지를 훔쳐보는 유마청신의 눈빛이 비상했다. 7년간 조선에 머물게 되는 그는, 훗날 자기 가신(家臣)과 마카오 주민 사이에 싸움이 벌어지자 덕천가강에게 보복 허가를 요구하고, 포르투갈 상선이 나가사키에 입항하자 선장을 잡아 가두기도 한다.

‘아리마 하루노부 이놈! 네놈이 내 공을 가로채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어림없을 줄 알아라.’

그런 생각을 하며 유마청신을 노려보는 종의지 눈빛 또한 여간 매섭지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