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에 대한 예의
소에 대한 예의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2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재청 (시인·진주제일여고 교사)
오랜만에 주말을 맞아 고향을 찾았다. 그리고 골목길을 걸었다. 오랫동안 그늘 속에서 말린 오동나무 향기가 묻어난다. 잘 익은 이 향기 속으로 어린 시절 읍내 오일장에서 갈치 한 마리 들고 비틀거리며 정자나무 그늘을 지나 올라오던 아버지가 떠오르는가 하면 방목하던 소를 몰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바라보던 검은 강물과 짙은 노을이 떠오른다. 이것뿐만이 아니다. 겨울날 아궁이에서 고구마를 굽던 일, 까치가 마음껏 파먹고 남긴 잘 익은 감과 초가지붕 그늘 아래 잘 말린 곶감, 오래된 우물과 이끼 낀 두레박, 동네 초가지붕을 덮으며 피어나던 밥 짓는 하얀 연기, 학교에서 돌아올 때마다 나를 반기며 꼬리를 흔들던 누렁이, 비를 맞으며 고구마 심던 일, 내가 무수히 잠겼던 푸른 하늘과 노을. 나는 이 모든 것을 그동안 잊고 있었다.

혹자는 오늘날을 신유목 시대라고 한다. 이미지가 범람하고 있다. 정보가 넘쳐나고 있다. 하루가 지나면 어제까지 우리가 찾던 정보나 이미지는 쓰레기가 되어 인터넷의 바다에 둥둥 떠다닌다. 쓰레기 하치장도 없는 사이버 공간에서 유성처럼 떠돈다. 경계가 없는 인터넷공간 전체가 어쩌면 쓰레기 하치장인지 모른다. 도처에 쓰레기가 유성처럼 떠다니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이미지와 정보를 찾아 광활한 인터넷 공간을 누비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용도 폐기될 정보와 이미지를 찾아 사막을 누비는 모습은 과거의 유목민들보다 훨씬 민첩하고 예민하다. 전광석화가 따로 없다. 과거 유목민들과는 달리 새로움에 대한 민첩함이고 예민함이다. 항상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되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황사바람에 묻혀 사라질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사이버 공간에서는 한곳에 오래 머물 수 없다. 그뿐만 아니라 풍경은 눈 깜박할 새에 사라지기 때문에 느긋하게 정지된 풍경을 바라볼 수도 없다. 풍경에 대한 기억조차도 시시각각 메모리 상태로 항상 저장되기 때문에 시나브로 떠올릴 수 있는 추억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지금 어쩌면 만져지지도 않고 느낄 수도 없는 세계로 진입하고 있는지 모른다. 말하자면 생기발랄한 무색무취의 세계에 살고 있다고나 할까. 이제 이것은 사이버공간만의 특징이 아니다. 현실공간과 사이버공간의 경계도 이제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디지털문명이 이러한 경계를 하나하나 지워가고 있다. 면역 항체에 길들여지듯이 우리는 이러한 현실의 변화를 실감하지 못한 채 거기에 점점 익숙해지고 있다.

속도의 시대에 부나비처럼 이미지를 쫓으면서 우리가 버리고 망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과거 자연과 더불어 살았던 인간들은 모두가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이름’으로 존재했다. 그리고 자연 속에서 만날 수 있는 모든 대상들은 그 자체로 하나하나 소중한 의미로 존재했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은 자연과의 풍요로운 교감 속에서 ‘스스로 자연의 풍경이 될’ 수 있는 행복을 잃어가고 있다. 이제 무한경쟁과 뒤틀린 욕망 속에서 점점 익명이 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소는 단순히 사육의 대상이 아니었다.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자연의 일부이면서 자연 그 자체의 의미로 다가왔다. 이 모든 삶의 정경들이 우리 주변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단순히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사라진 빈자리를 온갖 인위적인 이미지가 대신하면서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오늘의 삶은 아주 날렵하거나 너무 산뜻하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소가 되새김질하듯이 한 걸음 느리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가 필요한지 모른다. 그것은 바로 현대의 현란함과 속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걸어가고자 하는 느림의 철학이다. 이것이야말로 정신 없이 질주하는 현대적 삶의 대책 없는 속도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비책일지 모른다. 어떻게 보면 우리들이 과거에 경험하여 이미 알고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다. 단순하기 때문에 복잡한 현대적 상황을 극복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힘을 발휘할 것이다. 길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질주하는 욕망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에 길을 외면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현대인들이 ‘소에 대한 예의’를 회복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