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3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3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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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1. 길을 빌려 달라
 그날 정발은 절영도 앞바다에 나가 해상훈련을 하고 돌아오다가, 지친 군사들 피로도 풀어줄 겸 함께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만큼 부하들을 생각하는 그였다.

끊을 절, 그림자 영, 섬 도, 그런 의미를 가진 절영도였다. 말이 너무나 빠르게 달리는 바람에 그림자가 끊어질 정도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당시 말을 키우는 목장이 있어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

훗날 부산 ‘영도’라고 부르게 되는 그 섬은, 한국 근대사에 각별한 자취를 남기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3백여 년이 흐른 1898년, 제정러시아가 조선에 얼지 않는 해군기지, 즉 부동항(不凍港)을 만든다면서, 절영도의 석탄고 기지 조차를 요구한다. 조선 조정에서는 그에 굴하여 승인절차를 밟기 시작하지만, 독립협회가 만민공동회를 개최, 일제의 석탄창고 철거를 외치면서 러시아의 그 요구를 물리쳤던 것이다. 아무튼 숱한 굴곡의 세월을 거치게 되는 그 절영도 앞바다는 조선군 해상훈련 장소로서 좋았던 것이다.

“뭐? 왜놈들이 쳐들어왔다고? 아, 이 일을 어찌할꼬?”

왜군 내습보고를 접한 정발은 끝내 올 것이 오고야 말았구나! 싶었다. 그렇게도 크게 우려하던 적의 침공이었다. 어쩌면 이게 나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강한 예감이 신의 계시처럼 덮쳤다. 신채(神采)가 우람하고 단정한 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불길한 죽음의 그림자가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조정으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정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으로 승진하여 부산진 첨사에 임명된 그는, 부임 때부터 일본군의 침략을 예상하여 꾸준히 성의 방어시설을 보수하고 군사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 등, 왜적 방어능력을 기르는 데 밤낮으로 주력해오던 터였다.

그러나 그런 정발을 싫어하는 부하들은 없었다. 그의 호 ‘백운(白雲)’에 걸맞게 그를 추앙하는 군사들이 흰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대여섯 살 때부터 글 읽기를 즐기고 말수와 웃음이 적어서 어엿하게 선비다운 행실이 있던 그였다. 하지만 임지(任地)인 그곳으로 떠나려 할 때 울면서 어머니에게 하직인사를 올리던 일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충과 효 두 가지를 온전히 해낼 수가 없습니다. 소자가 왕가(王家)의 급병(急病)으로 말미암아 멀리로 떠나가오니, 어머니께서는 부디 몸을 아끼시고 이 자식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십시오.”

그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어머니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미 네가 나라에 그 한몸 바치기로 허락하였으니, 어느 겨를에 사사로운 정 따위를 돌아보겠느냐? 빨리 길을 떠나거라. 내 자식이 충신이 되는데, 어미 된 사람으로서 어찌 유감스럽게 생각하겠느냐?”

부사(府使) 자운의 딸인 아내를 돌아보며 마지막 부탁의 말을 남겼다.

“부인, 부디 나의 어머니를 잘 봉양해 주시오.”

그러자 집안 노복들도 한 가지로 눈물을 떨구었다. 정발은 25세 때 궁마(弓馬)로 무과에 급제하여 선전관에 선발되던 일을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런데 그 슬프고 아픈 기억들 속에서도 이제 고작 14세인 외동아들 정흔을 집으로 돌려보낸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렇긴 해도 부자지간 그 이별 또한 실로 심장을 후벼 파는 고통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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