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미야 (시인, 소설가)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되는 사람들. 유난히도 마음이 여린 까닭일까?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상처를 입어온 게 사실이다. 겉으로야 안 그런 척해도 돌아서면 스스로 갚을 길 없는 부채를 짊어진 것마냥 허덕일 때도 많다.
얼마 전에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 씨는 어느 지면을 통해서 ‘입만 까진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렇다. 요즘 입만 까지고 까칠하고 또 언행일치가 안 되면서 시쳇말대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되는 양 굴고, 또한 소위 문화인입네 하면서도 얄팍한 계산으로 영악하게 머리 굴리며 속으로는 배배 꼬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적인 순수성이 얼어붙은 요즈음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건 쉽지가 않다. 해서 사람들은 초록빛 아이 같은 감수성을 지닌 사람을 좋아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갑자기 옛 친구가 찾아와 꼬박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옛 친구라 당연히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고 했지만, 그 모든 게 불편하고 진땀이 나도록 그네와 함께한 시간이 힘들었다. 반면에 비록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지라도 그저 부담 없고 편안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 세상은 그런 관계를 코드가 잘 맞는다는 말을 한다. 허나 사람과의 소통에서 걸러 만날 수도 없는데 어찌 내 입맛에 다 맞겠는가. 때론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불협화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힘듦을 피해 비슷한 성향끼리 어울리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살아온 세월에 값하기 위해서라도 그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봄, 기침 한 번 하고 길을 나서봄이 어떨까? 차가운 땅 속에서 겨울을 났던 구근들이 움을 내고 만물들은 기지개를 켠다. 그 속으로 길을 나서 보자. 가을바람은 위에서 아래로 불고, 봄바람은 지면에서 위로 분다. 봄이 오면 소녀들 치맛자락이 부풀고 마음이 살랑대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나이 먹었지만 이 봄날 하루쯤 봄바람에 치맛자락 부푸는 소녀가 되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게다. 어깨 스치는 사람마다 웃음 보내며 걷다보면 비록 작은 가슴이라도 세상을 넉넉하게 담아낼 수 있잖겠는가. 연둣빛 겨운 이 봄날에.
전미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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