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에
어느 봄날에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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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야 (시인, 소설가)
해가 바뀐 게 엊그제인가 싶은데 어느덧 봄도 깊어져 간다. 창밖으로 보이는 햇살이 오늘 따라 더욱 따사롭게 느껴진다. 요즘 백세시대란 말을 흔하게 듣는다. 그만큼 수명이 늘었다는 이야기일 터이고, 그만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망도 복잡하게 형성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나고 헤어지는 그 수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에게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부딪쳐야 되는 사람들. 유난히도 마음이 여린 까닭일까? 살아오면서 이런저런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상처를 입어온 게 사실이다. 겉으로야 안 그런 척해도 돌아서면 스스로 갚을 길 없는 부채를 짊어진 것마냥 허덕일 때도 많다.

얼마 전에 작고한 소설가 최인호 씨는 어느 지면을 통해서 ‘입만 까진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그렇다. 요즘 입만 까지고 까칠하고 또 언행일치가 안 되면서 시쳇말대로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되는 양 굴고, 또한 소위 문화인입네 하면서도 얄팍한 계산으로 영악하게 머리 굴리며 속으로는 배배 꼬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적인 순수성이 얼어붙은 요즈음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건 쉽지가 않다. 해서 사람들은 초록빛 아이 같은 감수성을 지닌 사람을 좋아한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갑자기 옛 친구가 찾아와 꼬박 하루를 같이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옛 친구라 당연히 반가워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고 밥도 먹고 했지만, 그 모든 게 불편하고 진땀이 나도록 그네와 함께한 시간이 힘들었다. 반면에 비록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누지 않을지라도 그저 부담 없고 편안한 사람도 있다.

그렇다. 세상은 그런 관계를 코드가 잘 맞는다는 말을 한다. 허나 사람과의 소통에서 걸러 만날 수도 없는데 어찌 내 입맛에 다 맞겠는가. 때론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일어나는 불협화음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힘듦을 피해 비슷한 성향끼리 어울리기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살아온 세월에 값하기 위해서라도 그 모두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이 봄, 기침 한 번 하고 길을 나서봄이 어떨까? 차가운 땅 속에서 겨울을 났던 구근들이 움을 내고 만물들은 기지개를 켠다. 그 속으로 길을 나서 보자. 가을바람은 위에서 아래로 불고, 봄바람은 지면에서 위로 분다. 봄이 오면 소녀들 치맛자락이 부풀고 마음이 살랑대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록 나이 먹었지만 이 봄날 하루쯤 봄바람에 치맛자락 부푸는 소녀가 되어 보는 것도 괜찮을 게다. 어깨 스치는 사람마다 웃음 보내며 걷다보면 비록 작은 가슴이라도 세상을 넉넉하게 담아낼 수 있잖겠는가. 연둣빛 겨운 이 봄날에.

전미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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