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8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8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0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7장. 2. 오직 한번 죽는다
전투는 이내 종결되고 부산진성에 무자비한 왜군 군홧발과 맨발이 어지러웠다. 약 세 시간에 걸친 처절한 혈전이었다.

“눈에 보이는 대로 모조리 죽여라!”

“본보기를 보여야 다시는 저항할 생각을 못 할 것이다!”

왜군의 무차별 대규모 살육이 곳곳에서 자행되었다. 전쟁 전 풍신수길은 조선 백성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할 것을 명령했고, 비둘기파(반전파)였던 소서행장 역시 나름대로는 살생을 막으려 노력했다. 그렇지만 실제 싸움에서는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렵사리 성을 함락한 왜군은 남자, 여자, 개, 고양이 할 것 없이 모조리 살해하였다.

조선군의 강력한 저항에 의해 전우가 죽거나 부상당하고, 자신도 혼쭐이 난 왜병들은, 상관 명령도 무시한 채 조선인에게 화풀이를 해댄 것이다. 무엇보다 왜군들로서도 첫 전투에서 오는 부담감이 매우 컸을 것이고, 그것이 과도한 파괴행위로 이어졌을 것이니, 전쟁터에서의 정의는 오로지‘승리’일 뿐이라는 씁쓸한 진리 앞에 치를 떨 수밖에.

결국 경상좌수사 박홍은 모든 군함과 선박을 스스로 침몰시키고 군량 창고에 불을 지른 후 수영(水營)을 버리고 퇴각하기에 바빴다. 그러다 멀리서 바라보니 부산진성에 시뻘건 불길이 치솟고 있었다. 그 화마의 혓바닥이 자기를 향해 섬뜩한 뱀 혀처럼 날름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이날 아침 조정에 부산진성이 무너졌다는 장계를 올리고는 언양을 거쳐 경주로 도주하였다.

“장군! 부산진성이 그만…….”

“무어라? 정발 장군이……?”

동래부성에 있던 부사 송상현은 부산진성이 함락되고 정발이 전사했다는 보고를 받자 이마에 굵은 핏줄을 세웠다. 그의 단아한 입술 사이로 깊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아, 어찌 이런 일이……?”

호조와 예조, 공조의 정랑을 거쳐 지난해 동래부사에 부임한 그는, 정발과는 달리 문인 출신이었다. 그곳 동래도호부는 부산지역을 관할하는 행정 중심지였다. 당시 조선의 군사정책은 문인우위(文人優位)였으므로, 군사적 거점 역할이 강한 부산진에는 무인인 정발을 임명하고, 행정과 군사를 겸하는 동래부사에는 문관인 송상현을 앉혔던 것이다.

어쨌거나 조일전쟁이 터지자 경상좌도 지역은 비상사태로 돌입했고, 울산 병영에 있던 경상좌병사 이각은 군사를 이끌고 입성하였다. 양산군수 조영규도 달려와 수비군에 합류했다. 장성에서 태어난 그는, 명종 때 무과에 급제하여 용천부사 등 일곱 군데의 수령을 역임했는데, 가는 곳마다 청렴결백한 목민관으로 이름을 남겼다.

“가족들을 아들에게 맡기고 왜놈들과 싸우러 오셨대.”

“이 나라 관리 중에 저런 분들만 계신다면, 원숭이 같은 섬나라 오랑캐 놈들 수백 만 명이 쳐들어와도 끄떡없을 터인데…….”

“참으로 큰 별 같은 어른이신 게야.”

조영규는 그곳에 와서도 큰 칭송을 받았다. 나라가 너무나 어려운 시기였기에 더욱 빛이 나는지도 몰랐다.

종의지는 이번에도 소서행장의 명을 좇아 정발에게 했던 것처럼 송상현과의 협상에 나섰다. 그는 부하 100여 명을 시켜 목패에 글을 써서 동래부성 남문 앞에 세워놓게 했다. 거기에는 이런 글이 적혔다.

-싸우고 싶으면 싸우고, 싸우지 않으려면 길을 빌려 달라(戰則戰矣 不戰則假道).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1065 경남일보사
  • 대표전화 : 055-751-1000
  • 팩스 : 055-757-1722
  • 법인명 : (주)경남일보
  • 제호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 등록번호 : 경남 가 00004
  • 등록일 : 1989-11-17
  • 발행일 : 1989-11-17
  • 발행인 : 고영진
  • 편집인 : 강동현
  • 고충처리인 : 최창민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지원
  • 인터넷신문등록번호 : 경남, 아02576
  • 등록일자 : 2022년 12월13일
  • 발행·편집 : 고영진
  •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경남일보 - 우리나라 최초의 지역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gnnews@g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