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9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99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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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2. 오직 한번 죽는다
송상현은 이에 화답하는 글을 목패에 써서 부하들에게 남문 밖에 던지도록 했다.

-싸우다 죽긴 쉬워도, 길을 빌려 주기는 어렵다(戰死易 假道難).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항전하겠다는 바위 같은 의지였다. 깊은 신음소리를 내던 소서행장이 어둡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조선 정벌이 쉽지 않겠구나! 이 나라 무슨 정신이 저들을 저렇게……?”

“그러게 말입니다. 우리가 섣부른 판단을 한 것 같습니다.”

종의지도 투구에 꽂힌 괭이 모양의 쇳조각이 흔들릴 만큼 고개를 내저었다.

“대단한 자존심들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목숨과 바꾸려고 하니…….”

소서행장 표정이 싸늘해지면서 이빨 가는 소리가 나왔다.

“주겠다면 접수해야지.”

“하이! 그렇습니다. 하하하.”

“자네도 배가 큰 사람 아닌가? 어서 조선을 먹어치우고 명나라도 삼켜야지.”

또다시 왜군 공성과 조선군 수성이 불꽃을 튀기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그 전투 역시 부산진성 그것과 크게 다를 수 없었다. 병사 수와 무기 면에서 워낙 차이가 났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왜놈들이…….”

비장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와 고했다.

“아, 기어이…….”

송상현은 전세가 기울었음을 알았다. 측근 종행인 신여로에게 명했다.

“조복(朝服)을 가져오도록 하라.”

송상현은 갑옷을 벗고 조복으로 갈아입은 다음 호상(胡床)에 걸터앉았다. 곧이어 그는 호상에서 북쪽을 향해 네 번 절을 올렸다. 그러고는 지니고 있던 부채에 유시(遺詩) 한 수를 남겼다. 고향 부친에게 보내는 시였다.



고립된 성에는 달무리 에워싸고,

큰 진에서의 구원이 없사온즉,

임금과 신하의 의리가 중하니,

부자지간 은혜를 어찌 갚겠습니까?



그때 송상현을 발견하고 급히 다가오는 적장 하나가 있었다. 종의지의 부하 다이라라는 자였다. 그는 일찍이 자기 나라 사신을 수행한 적이 있었는데, 당시 송상현의 인품이 드물게 뛰어남을 알게 되었다.

“잘 지내셨습니까?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다시 만날 줄은…….”

다이라는 진정으로 송구스럽고 안타까워하는 빛이었다.

“어서 피신하십시오. 뒤는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나 다른 왜군들은 서로 먼저 송상현을 죽여 공을 얻으려고 야단이었다. 다이라는 다급한 목소리로 그들을 말렸다.

“멈춰라! 누구도 저분을 죽여서는 안 된다.”

송상현은 호상에 앉은 채 왜군들을 향해 무섭게 일갈했다.

“섬나라 오랑캐 놈들아! 나는 비록 억울하게 패했다만, 내 동족들이 너희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살아서는 네놈들 나라로 돌아갈 생각은 말아라.”

“빠가야로!”

왜군 칼이 허공을 갈랐다. 송상현은 자기를 벤 자를 매섭게 노려보며 두 눈을 뜬 채 죽었다. 눈동자는 한 곳을 향해 못처럼 고정돼 있었다. 종의지는 그의 충렬을 기려 동문 밖에 장사 지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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