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0회)
[김동민 연재소설] 진주성 비차(100회)
  • 경남일보
  • 승인 2014.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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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2. 오직 한 번 죽는다
조운은 무작정 달렸다. 그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하늘 가득 핏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비차가 보였다. 고개를 흔들고 다시 보니 키가 하늘에 닿을 듯한 장승이 노을에 젖어 있었다. 지난번 상돌과 함께 충청도 노성으로 가는 길에 보았던 벅수와는 또 달랐다. 기이하게 일그러진 커다란 탈을 둘러쓴 광대패 같았다.

장승에 등을 대고 앉았다가 돌아보는 촌로의 눈이 겁을 집어먹었다. 조운도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왜군이 부산진에 침입했다는 소식에다가 수없는 비차 제작 실패는 가랑잎 굴러가는 소리에도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어쩌다 길바닥에 널브러진 새의 시체라도 보면, 혹시 비차의 잔해가 아닌가 싶어 숨이 멎는 듯했다.

‘아무리 난리통이라지만,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면 어쩔 건가?’

왜인이 아닌 조선 노인인데도 마을사람들이 제사를 지내거나 치성을 드리는 장승보다도 더 조심스러운 존재로 다가왔다.

“어서 오시게. 어디서 오시는 길인가?”

촌로가 물어왔다. 그가 내는 사람 말소리를 듣자 조운은 안도감 같은 게 느껴졌다. 도무지 말을 하지 않는 둘님이었다. 그래 광녀의 웃음소리라도 듣고 싶은 게 요즘 그의 심사였다. 촌로는 조운을 방랑자 정도로 보는 눈치였다. 사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자 이곳저곳 발길 닿는 대로 미친 듯 쏘다니는 그는 방랑자같이 보였다.

“왜놈들이 미친개같이 사방팔방 설치고 다닌다는데…….”

촌로가 야문 음식을 입 안에 넣고 우물거리듯 홀쭉한 볼을 실룩이며 말했다. 이런 때에 가정은 어떡하고 혼자 그렇게 다니는 것이냐고 은근히 질책하는 것 같기도 하였다.

조운은 멀거니 장승을 올려다보았다. 그 크고 허연 이빨 사이로 천하에 지지리도 못난 놈이라고 자신을 꾸짖는 소리가 막 흘러나올 것 같았다. 조운은 스스로도 예상치 못한 소리를 꺼냈다.

“영감님, 이 장승이 날개를 달면 새처럼 날아다닐 수가 있을까요?”

“뭐라고? 아, 자네 방금 뭐라고 했는가?”

촌로는 가는귀가 먹은 사람같이 했다. 조운이 보기에 촌로는 아직 눈과 귀가 정정한 사람이었다. 그는 수상쩍다는 눈빛으로 조운을 훔쳐보았다.

‘나를 왜놈 첩자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조운은 쓴웃음이 삐어져 나왔다. 더 말하면 촌로는 그를 미치광이라고, 손에 들고 있는 장죽으로 사정없이 내리칠지도 모른다. 충청도 노성의 윤달규 사랑방에서 본 장죽걸이가 생각났다. 그는 정말 비차를 가지고 있는 걸까. 있다면 어디에 숨겨놓았을까.

“혹시 사냥 다니는 사람인가?”

촌로가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못하는 눈을 끔벅이며 물었다. 조운은 왜군이 무단으로 들어와 분탕질을 하고 있다는 남쪽을 보며 대답했다.

“왜놈 사냥을 하고 싶습니다만…….”

장승의 부리부리한 눈이 정백이라는 그 산적 두목을 연상시켰다.

“그럼 지원병인가?”

촌로의 말이 엉뚱했다. 조운도 엉뚱한 질문을 했다.

“공중에서 밑을 내려다보고 싸우면 훨씬 유리하지 않을까요?”

“그건 또 무슨 해괴한 소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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